백 현 주 (b. 1984)

“그들의 사정”

EN/KO


Released on 8 Sep 2023
Featured in ep.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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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주의 작업은 사회 속 개인들이 집단을 형성하고 그 안에서 생기는 사정들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 주목한다. 그는 주로 영상과 설치 작업을 통해 객관적인 관찰자로서 마주하는 광경들을 기록하고 왜곡없이 비춰주는 거울의 역할을 자처한다. 인간이란 그에게 사회적 규범이라는 한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면서도 동시에 그 규약을 뛰어넘을 힘이 내재된 존재로, 부딪힘과 다듬어짐을 반복해가는 아름다운 존재이다. 그의 작업은 서울 d/p (2022); 우르술라 발터 갤러리 (2022); 세종 예술의전당 (2019); 그리고 제12회 광주 비엔날레를 통해 공개 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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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해외로 거처로 옮기셨다고 들었는데, 어디에 머물고 계신가요?

현재 독일에서 지내는 중이에요. 그 간 지냈던 지역은 상대적으로 인종의 다양성이 덜해서 조금 답답한 감이 있었는데 베를린은 또 다른 부분이 있어 아직까진 만족하며 이곳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호주에서 미디어 아트로 학부 졸업 후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에서 대학원을 진학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호주를 택하게 된 특별한 사유가 있으셨나요?

처음 호주로 가게 된 것도, 영상이라는 매체를 택하게 된 것도 지극히 단순한 이유였어요. 학부는 사실 사진 전공으로 입학했는데, 작업을 하다 보니 인쇄 비용과 카메라가 너무 비싸 자연스레 반복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비디오를 선택하게 되었어요. 무엇보다 비디오 수업이 재미있었고요. 대학원 때는 비디오와 비선형적(non-linear)인 사운드나 설치 작업을 함께 했어요. 현재의 편집하는 방식이나 소재를 찾는 방식 모두 학부와 대학원 시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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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께서 사람과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사정 관심이 있다고 말씀하신 언젠가 다른 매체에서 적이 있어요. 학업 뿐만 아니라 레지던시 관련해서도 다양한 문화권을 경험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국가, 혹은 문화권마다 사람들과 그들의 사정 간에 차이가 있다고 느끼셨나요? 아니면 국경을 초월한 인간의 보편적인 모습에 관심을 가지셨나요?

학교를 졸업하고 해외의 다양한 레지던시를 경험하며 제가 그 사회의 주류가 될 수 없는 타자라는 점을 많이 느꼈어요. 기존 사회에서 꾸려진 집단들을 제3자의 시선에서 관찰하는 시간들이 많았던 거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그 사회에서 집단을 형성하는 사람들의 사정과 그 내부 이야기에 (들어가려 하기보다) 귀 기울이려 했고, 그렇게 수집한 이야기들을 내가 하나의 거울이 되어 반사 및 재생산하는 역할을 궁극적으로 하고 싶었어요. 이미 저에게는 카메라 렌즈라는 어쩔 수 없는 물리적인 왜곡이 덧대어진 상황이다 보니 가능한 그 이외의 (집단에 대한) 왜곡이나 굴곡을 없애려고 노력했습니다. 다시 말해, 제가 놓여진 상황 속에서 최대한 왜곡없이 다른 이들에게 제가 바라보는 사회를 보여줄 수 있을지에 대해 관심이 많다고 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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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에 개입하기 보다는 타자로서의 입장을 받아들이고 관찰을 하려 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네요. 새로운 집단을 마주하게 때마다 관찰을 용이하게 하는 요인이 있나요?

시간이요. 새로운 집단과 연이 닿으면 시간을 두고 오랫동안 한 곳에 앉아있어요. 마치 처음에는 사람들이 의식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늘 그곳에 있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는 존재인 감시카메라처럼 말이에요. 작업을 처음 시작하게 되면 그 곳에 오래도록 머물려고 해요. 일기를 적거나 글을 쓰기도 하지만 그런 것들은 부차적이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제가 관찰하고자 하는 사회나 상황 속에 내 자신이 편해질 때까지 머물며 시간에 많이 기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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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에 따라 우연성이 개입하는 정도가 달라지는 듯해요흥신소를 직접 마련하여 운영하셨던 프로젝트인 <흥신소>(2011) 승선 레지던시 기간 동안 항해하는 배에서의 일상을 담은 <중간에 >(2012) 현실의 모습을 그대로 담는 듯한 느낌이에요. 반면, <성북구 성북동>(2020) <친절한 영자씨>(2013) 보다 세밀한 사전 계획과 대본을 염두에 두고 진행된 것으로 보여요. 특히 <친절한 영자씨> 스크립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큐멘터리인지 헷갈릴 정도로 자연스럽게 화면에 등장해 인상적이었어요. 작업과정 등에 있어 조금 설명해주실 있나요?

많은 사람들이 종종 (자연스럽다는) 그런 이야기를 해요. 그런데 제 작업은 대부분 스크립트 뿐만 아니라 사전 제작 단계도 거치는 작업인 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러움이 부각되는 이유는 제가 작업을 접근할 때 저의 작업이, 혹은 영상이라는 일종의 무대(stage)가 현실을 어떻게 보여주는지에 초점을 맞춰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해요. 일종의 ‘staged reality’라고 표현 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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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영자씨>의 경우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특정 장면이 촬영된 동네의 인근 주민들을 2년 정도 인터뷰 한 뒤, 그 중 중요한 부분들을 모아 만든 작업입니다. 그런데 2년에 걸쳐 인터뷰를 하는 동안, 동일한 질문에 대한 답변이 시시각각 달라지는 것을 경험했어요. 때로는 다른 사람의 맞장구로 인해 과장되기도 하고, 반박으로 인해 특정 부분이 흐릿해지기도 하고 말이에요. 동네 전체가 하나의 영화에 대한 기억을 서서히 바꾸어 나가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이렇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바뀌어가는 기억의 변화들을 사계절로 나누어 표현해보았습니다. 단면은 똑같은데 그걸 둘러싼 사람들의 기억과 계절이 달라진다랄까요.

<성북구 성북동>과 <친절한 영자씨> 모두 해당 지역주민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만들어진 작업이고, 저는 그 이야기를 취합 및 기록 후 렌즈로 옮기는 역할을 했어요. 기억을 쌓아간다는 점에서 작업 과정은 둘다 비슷했어요.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기억이라는 소재를 다루며, 저의 주관이 개입된 부분은 시각적인 이미지를 만드는 방식 뿐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작가님의 작업은 사람에게서 시작해 사람으로 끝나서 그런지, 일상과 맞닿아 있다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사람을 다루는 작업을 하며 특별히 염두에 두시는 부분이 있나요?

학부에서 영상 매체에서의 인터랙션(interaction)에 관한 수업을 들으며, 영상 작업에서의 ‘사람’이라는 주체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가에 관한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저에게 현대미술에서의 진정한 인터랙션이란 단순히 사람에 의해 (작업이) 작동이 되는 개념이 아니라, 보는 이가 신체적, 정신적 참여를 통해 작업에 동감하고 영상 속 상황에 처해진 사람과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을 늘 잊지 않고 작업에 임하려고 노력해요.




이번프리즈 필름 맞아  마더 오프라인에서 선보이는 스크리닝 작업에 대해 간략히 소개 부탁드려요.

이번 프리즈 필름에서는 <친절한 영자씨>와 <사건의 지평선>(2019)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친절한 영자씨>의 경우, 작업 특성상 전시 때 늘 스토리라인 도큐멘터리를 같이 선보였었는데, 이번에는 그러한 부차적인 스토리텔링의 소재는 제외하고 처음으로 영화로서의 서사만 조명할 예정이에요.

<사건의 지평선>은 5개의 채널로 이루어진 영상인데요, 어떠한 정보도 들어갔다 나올 수 없는 갇혀있는 블랙홀의 상태를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영상 속의 퍼포머들은 서로 거울로 마주보고 있는 듯한 자세로 ‘현실주의자’나 ‘지금’과 관련된 반복적인 이야기들을 해 나갑니다. 또, 김근태 선생님의 평전을 읽고 영감을 받아 시작된 작업이기도 해요. 그 분이 현실주의라는 이야기를 책에서 접하고, 과연 현실주의라는 개념이 어떠한 시간성을 띠고 있는 것인가라는 궁금증을 가지게 되었어요. 궁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다소 디스토피아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사람이 사회를 구성하고 살아가는 과정 자체가 거시적인 관점에서는 어떠한 새로운 정보도 들어갔다 나오는 것이 없고, 그저 일직선으로 무한한 진공의 상태인 것은 아닐까라고 느꼈습니다. 이 작업을 제작했던 2019년이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특히나 더욱 진공의 현실로 느껴졌던 것 같아요. 더 많은 분들에게 이번 프리즈 필름을 통해 다가갈 수 있게 되어 반가운 마음입니다.


이번 프리즈 서울 기간동안 진행되는 프리즈 필름에서는 백현주의  <친절한 영자씨>(2013)와 <사건의 지평선>(2019)이 2023년 9월 9일까지 상영될 예정이다. 더 자세한 정보는 전시 공간인 마더 오프라인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frieze.com/frieze-film/mother-off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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