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에 있어 무엇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냐는 질문에 임노식은 지리적 이력이라고 답한다. 어느 곳에서 태어나고 지금은 어디에 사는 가가 누군가에게 자신을 설명할 때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요소라는 의미에서다. 고향인 여주를 포함해 그의 지리적 이력을 이루는 공간적 좌표들은 지나간, 혹은 다가올 시간과 교차하며 매번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며 화면에 은유성을 더한다. 미술관과 대안 공간을 넘나들며 활발하게 작업을 선보이고 있는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그의 작업은 서울 금호미술관(2023); 서울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2023); 서울 뮤지엄헤드(2023); 서울 일민미술관(2023); 서울 보안여관(2022); 서울 d/p(2021); 인천아트플랫폼 윈도우갤러리(2020) 등에서 선보여진 바가 있으며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경기도미술관, OCI 미술관, 일민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최근 두 차례의 개인전을 연이어서 하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올해 3월에는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에서 《긴 이야기》(2023)를, 5월 금호미술관에서는 《깊은 선》(2023)을요. 바쁜 상반기를 보내신 것 같은데, 요즘 근황은 어떠신가요?
오는 12월과 1월에 전시들이 예정되어 있어 신작과 함께 준비 중이에요. 다시 유화 작업에 집중하려는 중이기도 하고요.
소재나 방식 등에 있어서 이전 전시들과는 다르게 접근하려는 부분들이 있나요?
공기를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요즘이에요. 특히 작업실 안의 공기를 그리고 싶어요. 맨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존재를 표현하기 위해 (그릴) 대상이 필요한 것들이요. 흔히 보이지 않는 걸 그리기 위한 방법으로 추상을 떠올리곤 하는데, 저는 구상을 통해 비가시적인 것들을 표현하고 싶더라고요.
처음에는 무작정 표면에 물감층을 모아 질감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어요. 마치 공기를 모으는 것처럼요. 그런데 제가 원하는 공기의 모습이 잘 나오지 않아, 요즘은 이전에 그렸던 작업실 실내 풍경을 통해 표현해 보려고 노력 중이에요. 공기를 포착하기 위해서는 풍경 자체보다 저와 대상, 대상과 캔버스, 그리고 캔버스와 저, 이렇게 세 요소 사이의 순환과 소통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순환을 돕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법론들을 동시에 활용해야 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대상의 형상을 조금씩 지워 나가되, 어렴풋한 존재감은 남겨둠으로써 저와 대상 사이의 공기를 포착한다든지요.
위 두 전시에서 선보이신 작업들도 그렇고, 《비워낸 풍경》(art space 0, 2022)이나 《모래산》(인천 아트플랫폼, 2022) 등에서의 최근작들을 떠올리면 작가님 특유의 연한 파스텔 톤의 색감이 먼저 떠올라요. 특별히 연한 색상을 사용하시는 이유나 계기가 있으셨던 걸까요?
동양화를 전공했던 학부 시절의 영향이 있는 것 같아요. 물감으로 색을 만들 때 흰색을 많이 사용하는 편인데, 동양화 재료 중 조개껍질이나 굴 껍데기를 분쇄해서 만든 호분이라는 흰 재료가 있거든요. 그 호분을 많이 쓰던 방식이 여전히 남아 있는 듯해요. 이 외에도 제가 색을 쓰는 전반적인 방식에 동양화의 흔적이 자연스레 배 있다고 느껴요. 예를 들어, 서양화에서는 물감을 쓸 때 검정색을 섞는 게 흔하지 않은 편인데, 동양화에서는 먹으로 농담을 내다보니 검은색도 거리낌 없이 섞게 되더라고요. 바니쉬를 바를 때도 (동양화에서 사용되듯이) 흰색을 섞어 서너 겹을 올리는 편이에요. 그럼, 결과적으로 색이 한 층 가라앉는 분위기가 생겨요.
지금까지 전시에서 선보이신 소재나 작업 방식에도 동양화의 영향이 있었던 걸까요?
제 최근 작업에서 전반적으로 발견되는 굵기가 가는 선은 동양화의 그림 그리는 방식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된 움직임이었어요. 기운생동, 일필휘지의 개념에서 알 수 있듯이 동양화에서는 주로 선적인 작업이 체본이라고 하잖아요. 매난국죽을 그릴 때도 마른 화선지 위에 적당한 붓의 크기와 먹의 양으로, 빠른 속도를 잘 조절해 가며 선을 쳐야 하고요. 기운이 생동하기 위해서는 모든 요소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진 선을 쳐야 한다는 건데, (굵기가) 가는 형태의 선으로도 그런 기운을 낼 수 있을지 궁금했어요. 오히려 선이 아니라 바탕에 집중함으로써 선에 더 힘이 생기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요.
위에 언급한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와 금호미술관에서의 개인전에서도 가는 형태의 선들이 부각되는 걸 알 수 있어요. 시기적으로 연달아 열리는 전시였는데, 준비하시면서 두 전시 사이의 상관관계 등에 있어 특별히 고민하신 점이 있으셨나요?
두 전시 모두 저의 아버지와의 대화를 토대로 한 작업들로 이루어졌어요. 어느 날, 아버지와 통화를 하는데 아버지께서 제가 그리는 모래 산에 산책을 왔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모래 산은 10년 전 정부 사업의 일환으로 생겨난 인공 모래 산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며 진짜 산이 되었어요. 그러면서 그 사이 모래 썰매장이 개장했다 일주일 만에 폐장되기도 하고, 모래 산으로 인해 멸종됐던 꽃이 다시 피어나기도 하는 등 여러 사건들이 있었어요. 아버지와 통화를 하면서 그런 사건과 풍경에 대한 묘사를 간접적으로 전달 받게 되는데, 그 묘사는 결국 불특정한 시차를 두고 여러 번에 걸쳐 재구성된 이미지예요. 그런 소소한 사건들에서 이미지를 수집했어요.
두 전시가 비슷한 시기에 연이어 열리다 보니, 서로 중첩되지 않는 작업을 선보이고 싶었어요. 사루비아 전시에서는 명확한 뉘앙스나 분위기는 존재하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은, 혹은 일어나거나 남아있는 불확실한 ‘그곳’에 초점을 맞춘 전시였어요. 다시 말해, 이전에는 명확한 공간과 주제를 상정하고 전시를 준비했다면, 해당 전시는 모호한 주제에서 출발해 구체성을 역추적해서 찾아가는 시도였죠. 그에 반해 금호미술관 전시에서는 작업 방식 자체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모든 소재들이 가는 선으로 표현되고 판화와도 연결되었어요. 가늘고 얇지만, 명확한 선을 표현하기 위해 동판화 형식을 작업 속으로 가져왔어요.
개장되었다 금방 폐장된 모래 썰매장, 멸종되었다 다시 피어난 꽃. 모두 사라짐과 존재함을 반복하는 일화들이네요.
맞아요. 있었다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기록은 제 표현 방식과 소재나 풍경을 관찰하는 작가로서 자세와도 연결된다고 느껴요. 거리 두기, 지우기, 분석하기, 인식하기, 비움에 이르기까지, 여러 단계를 반복적으로 수행하면서 자발적인 우연성을 추구하거든요.
《Re search》(서울 교육대학교 샘 미술관, 2020)이나 《물수제비》(통의동 보안여관, 2020), 그리고 《R.I.P.-고요한 기억》(디스위켄드룸, 2018)에서의 전시 방식이 유독 눈길을 끌어요. 이미지로 되살아난 기억의 아카이브이자 앨범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작업에 등장하는 이미지들은 작가님의 기억에서 비롯한 건가요?
제 첫 개인전 《안에서 본 풍경》(OCI 미술관, 2016)때 만해도 제가 직접 촬영한 사진만을 활용했어요. 그러다 이후, 모래 산 시리즈를 시작할 시기에는 사진에 의존하기보다 직접 현장에 가서 사생을 하거나 드로잉에서 착안하기 시작했어요. 변화의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기보다 첫 개인전 때는 회화에 대해 깊은 고민 없이 순수하게 시작했던 것 같아요. 또, 《안에서 본 풍경》은 전시작들의 특성상, 서사적인 이야기가 무척 강했던 전시였던 지라 뒤이어 열렸던 《Folded Time》(2017, 합정지구) 전에서는 그 서사성을 좀 덜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그래서 일부러 작업 과정에서 가용할 수 있는 이동 반경에 제약을 주고 강제적으로 작업 시간을 정해 시공간을 무감각하게 만들기도 했어요. 그 속에서 발견되는 이미지들을 드로잉하고 캔버스에 옮기는 방법을 택한 거죠.
앞서 언급한 전시들에서 발견되는 또 하나의 공통점은 공간에 대한 관심이에요. 특히 《물수제비》는 전시장 구석구석과 벽을 알차게 활용한, 대부분 회화로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장소 특정적인 느낌이 강한 전시였던 걸로 기억해요.
맞아요, 공간에 대한 관심은 늘 꾸준히 있었어요. 해당 전시 때 본격적으로 공간 개입을 기반으로 한 전시를 꾸리고 싶다고 결심했었어요. 관객분들의 반응도 무척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쉬움이 남는 전시이기도 해요. 돌이켜보면 그림에 집중이 안 되고 주위 벽들에 오히려 시선이 분산된다고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이후에 열린 전시에서는 오로지 회화에만 주의가 집중될 수 있게 했어요. 《홀로 작동하지 않는 것들》(아마도예술공간, 2020)에서 외부로 향하는 전시 공간의 창문에 그림을 설치하는 것도 그 시도의 일환 중 하나였어요.
저는 관습적인 회화 전시의 틀을 깨는 것 같아 인상적이었는데, 작가님 입장에서는 그렇게 느껴지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전시를 이야기할 때마다 아쉬움이 남았다는 말씀을 자주 하시는데, 작가님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운 전시도 있으셨나요?
첫 개인전 《안에서 본 풍경》이요. 가장 담담하고 꾸밈없이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시절이었던 것 같아요. 회화라는 매체가 크게 두렵지 않았던 시기이기도 했고요. 당시에는 자연과 날씨, 풍경에 대한 경외심으로 가득했고 그 감정을 바탕으로 늘 작업에 임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두려운 마음이 커져요. 내가 보는 것들에 대한 경외심보다는 회화라는 매체 앞에서 느껴지는 무력감이 더 크다랄까요. 한때 제가 온전히 저의 작품만큼은 쥐락펴락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던 예전을 반성하고 성찰하게 되는 요즘이에요.
그의 작업은 서울 금호미술관(2023); 서울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2023); 서울 뮤지엄헤드(2023); 서울 일민미술관(2023); 서울 보안여관(2022); 서울 d/p(2021); 인천아트플랫폼 윈도우갤러리(2020) 등에서 선보여진 바가 있으며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경기도미술관, OCI 미술관, 일민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최근 두 차례의 개인전을 연이어서 하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올해 3월에는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에서 《긴 이야기》(2023)를, 5월 금호미술관에서는 《깊은 선》(2023)을요. 바쁜 상반기를 보내신 것 같은데, 요즘 근황은 어떠신가요?
오는 12월과 1월에 전시들이 예정되어 있어 신작과 함께 준비 중이에요. 다시 유화 작업에 집중하려는 중이기도 하고요.
소재나 방식 등에 있어서 이전 전시들과는 다르게 접근하려는 부분들이 있나요?
공기를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요즘이에요. 특히 작업실 안의 공기를 그리고 싶어요. 맨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존재를 표현하기 위해 (그릴) 대상이 필요한 것들이요. 흔히 보이지 않는 걸 그리기 위한 방법으로 추상을 떠올리곤 하는데, 저는 구상을 통해 비가시적인 것들을 표현하고 싶더라고요.
처음에는 무작정 표면에 물감층을 모아 질감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어요. 마치 공기를 모으는 것처럼요. 그런데 제가 원하는 공기의 모습이 잘 나오지 않아, 요즘은 이전에 그렸던 작업실 실내 풍경을 통해 표현해 보려고 노력 중이에요. 공기를 포착하기 위해서는 풍경 자체보다 저와 대상, 대상과 캔버스, 그리고 캔버스와 저, 이렇게 세 요소 사이의 순환과 소통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순환을 돕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법론들을 동시에 활용해야 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대상의 형상을 조금씩 지워 나가되, 어렴풋한 존재감은 남겨둠으로써 저와 대상 사이의 공기를 포착한다든지요.
위 두 전시에서 선보이신 작업들도 그렇고, 《비워낸 풍경》(art space 0, 2022)이나 《모래산》(인천 아트플랫폼, 2022) 등에서의 최근작들을 떠올리면 작가님 특유의 연한 파스텔 톤의 색감이 먼저 떠올라요. 특별히 연한 색상을 사용하시는 이유나 계기가 있으셨던 걸까요?
동양화를 전공했던 학부 시절의 영향이 있는 것 같아요. 물감으로 색을 만들 때 흰색을 많이 사용하는 편인데, 동양화 재료 중 조개껍질이나 굴 껍데기를 분쇄해서 만든 호분이라는 흰 재료가 있거든요. 그 호분을 많이 쓰던 방식이 여전히 남아 있는 듯해요. 이 외에도 제가 색을 쓰는 전반적인 방식에 동양화의 흔적이 자연스레 배 있다고 느껴요. 예를 들어, 서양화에서는 물감을 쓸 때 검정색을 섞는 게 흔하지 않은 편인데, 동양화에서는 먹으로 농담을 내다보니 검은색도 거리낌 없이 섞게 되더라고요. 바니쉬를 바를 때도 (동양화에서 사용되듯이) 흰색을 섞어 서너 겹을 올리는 편이에요. 그럼, 결과적으로 색이 한 층 가라앉는 분위기가 생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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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전시에서 선보이신 소재나 작업 방식에도 동양화의 영향이 있었던 걸까요?
제 최근 작업에서 전반적으로 발견되는 굵기가 가는 선은 동양화의 그림 그리는 방식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된 움직임이었어요. 기운생동, 일필휘지의 개념에서 알 수 있듯이 동양화에서는 주로 선적인 작업이 체본이라고 하잖아요. 매난국죽을 그릴 때도 마른 화선지 위에 적당한 붓의 크기와 먹의 양으로, 빠른 속도를 잘 조절해 가며 선을 쳐야 하고요. 기운이 생동하기 위해서는 모든 요소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진 선을 쳐야 한다는 건데, (굵기가) 가는 형태의 선으로도 그런 기운을 낼 수 있을지 궁금했어요. 오히려 선이 아니라 바탕에 집중함으로써 선에 더 힘이 생기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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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언급한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와 금호미술관에서의 개인전에서도 가는 형태의 선들이 부각되는 걸 알 수 있어요. 시기적으로 연달아 열리는 전시였는데, 준비하시면서 두 전시 사이의 상관관계 등에 있어 특별히 고민하신 점이 있으셨나요?
두 전시 모두 저의 아버지와의 대화를 토대로 한 작업들로 이루어졌어요. 어느 날, 아버지와 통화를 하는데 아버지께서 제가 그리는 모래 산에 산책을 왔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모래 산은 10년 전 정부 사업의 일환으로 생겨난 인공 모래 산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며 진짜 산이 되었어요. 그러면서 그 사이 모래 썰매장이 개장했다 일주일 만에 폐장되기도 하고, 모래 산으로 인해 멸종됐던 꽃이 다시 피어나기도 하는 등 여러 사건들이 있었어요. 아버지와 통화를 하면서 그런 사건과 풍경에 대한 묘사를 간접적으로 전달 받게 되는데, 그 묘사는 결국 불특정한 시차를 두고 여러 번에 걸쳐 재구성된 이미지예요. 그런 소소한 사건들에서 이미지를 수집했어요.
두 전시가 비슷한 시기에 연이어 열리다 보니, 서로 중첩되지 않는 작업을 선보이고 싶었어요. 사루비아 전시에서는 명확한 뉘앙스나 분위기는 존재하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은, 혹은 일어나거나 남아있는 불확실한 ‘그곳’에 초점을 맞춘 전시였어요. 다시 말해, 이전에는 명확한 공간과 주제를 상정하고 전시를 준비했다면, 해당 전시는 모호한 주제에서 출발해 구체성을 역추적해서 찾아가는 시도였죠. 그에 반해 금호미술관 전시에서는 작업 방식 자체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모든 소재들이 가는 선으로 표현되고 판화와도 연결되었어요. 가늘고 얇지만, 명확한 선을 표현하기 위해 동판화 형식을 작업 속으로 가져왔어요.
개장되었다 금방 폐장된 모래 썰매장, 멸종되었다 다시 피어난 꽃. 모두 사라짐과 존재함을 반복하는 일화들이네요.
맞아요. 있었다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기록은 제 표현 방식과 소재나 풍경을 관찰하는 작가로서 자세와도 연결된다고 느껴요. 거리 두기, 지우기, 분석하기, 인식하기, 비움에 이르기까지, 여러 단계를 반복적으로 수행하면서 자발적인 우연성을 추구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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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search》(서울 교육대학교 샘 미술관, 2020)이나 《물수제비》(통의동 보안여관, 2020), 그리고 《R.I.P.-고요한 기억》(디스위켄드룸, 2018)에서의 전시 방식이 유독 눈길을 끌어요. 이미지로 되살아난 기억의 아카이브이자 앨범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작업에 등장하는 이미지들은 작가님의 기억에서 비롯한 건가요?
제 첫 개인전 《안에서 본 풍경》(OCI 미술관, 2016)때 만해도 제가 직접 촬영한 사진만을 활용했어요. 그러다 이후, 모래 산 시리즈를 시작할 시기에는 사진에 의존하기보다 직접 현장에 가서 사생을 하거나 드로잉에서 착안하기 시작했어요. 변화의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기보다 첫 개인전 때는 회화에 대해 깊은 고민 없이 순수하게 시작했던 것 같아요. 또, 《안에서 본 풍경》은 전시작들의 특성상, 서사적인 이야기가 무척 강했던 전시였던 지라 뒤이어 열렸던 《Folded Time》(2017, 합정지구) 전에서는 그 서사성을 좀 덜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그래서 일부러 작업 과정에서 가용할 수 있는 이동 반경에 제약을 주고 강제적으로 작업 시간을 정해 시공간을 무감각하게 만들기도 했어요. 그 속에서 발견되는 이미지들을 드로잉하고 캔버스에 옮기는 방법을 택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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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한 전시들에서 발견되는 또 하나의 공통점은 공간에 대한 관심이에요. 특히 《물수제비》는 전시장 구석구석과 벽을 알차게 활용한, 대부분 회화로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장소 특정적인 느낌이 강한 전시였던 걸로 기억해요.
맞아요, 공간에 대한 관심은 늘 꾸준히 있었어요. 해당 전시 때 본격적으로 공간 개입을 기반으로 한 전시를 꾸리고 싶다고 결심했었어요. 관객분들의 반응도 무척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쉬움이 남는 전시이기도 해요. 돌이켜보면 그림에 집중이 안 되고 주위 벽들에 오히려 시선이 분산된다고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이후에 열린 전시에서는 오로지 회화에만 주의가 집중될 수 있게 했어요. 《홀로 작동하지 않는 것들》(아마도예술공간, 2020)에서 외부로 향하는 전시 공간의 창문에 그림을 설치하는 것도 그 시도의 일환 중 하나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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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관습적인 회화 전시의 틀을 깨는 것 같아 인상적이었는데, 작가님 입장에서는 그렇게 느껴지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전시를 이야기할 때마다 아쉬움이 남았다는 말씀을 자주 하시는데, 작가님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운 전시도 있으셨나요?
첫 개인전 《안에서 본 풍경》이요. 가장 담담하고 꾸밈없이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시절이었던 것 같아요. 회화라는 매체가 크게 두렵지 않았던 시기이기도 했고요. 당시에는 자연과 날씨, 풍경에 대한 경외심으로 가득했고 그 감정을 바탕으로 늘 작업에 임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두려운 마음이 커져요. 내가 보는 것들에 대한 경외심보다는 회화라는 매체 앞에서 느껴지는 무력감이 더 크다랄까요. 한때 제가 온전히 저의 작품만큼은 쥐락펴락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던 예전을 반성하고 성찰하게 되는 요즘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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