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도 희 (b. 1979)

“이곳 너머에”

EN/KO


Released on 31 Oct 2023
Featured in ep. 2

︎︎
김도희는 신체의 작동 체계를 근간으로 설치, 퍼포먼스, 텍스트, 사진 등 전방위적 작업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실존에 대한 의구심과 죽음을 둘러싼 관습적 표현부터 약자를 향한 폭력, 여성의 출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 의식을 담은 김도희의 작업은 관람객을 ‘지금, 여기’로 불러와 현실을 감각하게 한다.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 다른 세상에서 존재하던 우리는 없어지고, 현재에 존재하게 된다는 공상과학적 상상력을 그는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김도희의 작품은 보는 이가 스스로의 존재를 의심하도록 만들지만, 동시에 이 감각 그대로, 이 모습 그대로의 우리도 괜찮다는 위로를 건넨다. 결국 우리를 채워줄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우리 주위에, 가까이가 아니라면 이 세상 너머에 분명 존재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김도희는 서울 인사미술공간(2011); 서울 진화랑(2017); 서울 CR-Collective(2020); 서울 김희수아트센터(2022) 등 유수의 기관 및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2022 부산 비엔날레, 2021 강원국제트리엔날레, 2020 여수국제미술제 등 다양한 미술제에 참여하며 작품을 선보여 왔다. 그는 2021년 수림미술상 대상을 수상하였으며, 그의 작품은 수림문화재단, 국립현대미술관, 부산현대미술관, 수원시립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작가님 작업 전반의 근간이 되는 신체의 작동 체계에 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와 그 의미가 궁금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 아파서 누워있던 기간이 있었는데요. 이때 내가 이 세상에 실제로 존재하는지에 대해 막연한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 존재에 대한 의심인 거 같아요. 예를 들어 제가 누워있을 때 저 멀리 보이는 저의 엄지발가락 두 개가 내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모호함과 일종의 기시감이 들었어요. 저의 의지로 발가락을 ‘까딱' 움직여 보면 그게 나이구나 싶지만, 그렇지 않은 순간에 들었던 제 존재에 대한 의구심이 항상 제 기억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또한, 어디까지가 나인지에 대한 생각은 관습적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일시적이고 많은 조건 아래에서 신체가 작동하고 자아를 인식하는구나 싶었어요. 그런 생각에서부터 시작하여 몸이 동반되는 작업을 많이 하게 되었어요. 직접적으로 신체를 활용하지 않아도 여러 방면에서 그 문제에 대해 건드리는 작업을 하게 되는 거죠.

                
Swipe to see more images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가지고 작업을 해오셨는데요, 각 소재 및 주제별로 활용하는 매체의 선택 기준 또한 궁금합니다.

작가마다 기질적으로 다를 것 같은데, 저는 제 몸으로 부딪치고 직접 경험해야 이질감이 없고 성에 차는 것 같아요. 어느 작업을 하던 제 몸을 거쳐 가는 게 큰 의미로 다가오기 때문에, 제 몸으로 실행하고 수행하는 작업을 하는 경향이 있죠. 특히 저는 인위적인 재료는 꺼리게 되어요. 예를 들어, 저는 (회화과를 졸업했지만) 그림을 그렸던 작업은 딱 한 번 있었을 정도죠. 그때조차 페인트를 사용해서 벽에 그림을 그렸고요. 인위적으로 생산해 내는 재료는 잘 와 닿지 않아요. 이에 따라 기존에 있는 미술 재료보다는 날 것, 자연적이고 평상시에 자주 마주하는 재료를 많이 활용해 왔습니다.


2022년 부산비엔날레에서 선보이신 <살갗 아래의 해변>(2017)은 신체가 가진 많은 특성 중에서도 유독 노동이라는 키워드를 떠올리게 해요. 특히 갤러리의 벽을 연마기로 갈아내어 갤러리 벽에 숨어있던 페인트층들을 통해 새로운 무늬를 만드신 점이 인상 깊었어요. 이 작품의 작업 과정, 그리고 많은 이들에겐 생소할 ‘깡깡이’를 작품의 소재로 삼은 계기가 궁금해요.

사실 노동이라는 키워드 자체에 크게 의미를 두고 시작한 작업은 아니에요. 저는 부산 영도의 깡깡이 마을에서 태어나 어릴 적 조부모님 아래에서 자랐어요. 제가 살았던 집 근처의 조선소에서 나오는 소리와 그 지역에 있던 여러 공업소의 냄새, 영도 바다의 파도와 땅의 기운 등등이 저의 뼈와 살이 커 갈 때 함께하며 무늬처럼 흔적을 남겼을 것으로 생각해요. 어릴 때는 조선소 노동자들이 해왔던 ‘깡깡이'라는 작업을 언젠간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러던 와중에 2017년 진화랑 개인전 《혀뿌리》를 앞두고는 제 몸의 형성 과정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어요. 어렸을 때 느꼈던 감각들이 제 몸을 이루고, 그것들이 하나의 매체가 됐다는 확신이 들었고, 영도에서 형성되었던 저의 감각들을 다시 불러내서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해당 갤러리 벽에 직접 깡깡이 질을 했고, 이 작업을 벽에서 떼어내어 부산비엔날레에서도 선보이게 된 것이에요. 작업을 할 당시에는 깡깡이 작업으로 인한 분진으로 벽에 생기는 흔적을 실시간으로 확인 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이미지는 부차적이고, 작업을 하면서 느꼈던 진동과 소음을 훨씬 더 선명히 기억해요. 작업할 때를 떠올리면 바로 온몸에서 진동이 오는 느낌이죠. 해당 작품의 작업 과정 자체가 저에겐 예술가로서의 노동 현장이었다고 할 수 있겠죠. 예술 행위 자체를 노동으로 해석한다면요.

*’깡깡이’는 수리 조선소에서 배 표면에 녹이 슬어 너덜너덜해진 페인트나 조개껍데기를 망치로 두드려 벗겨낼 때 깡깡 소리가 난다고 하여 생겨난 말이다.


Swipe to see more images

<만월의 환영>(2012)에서는 모유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한 《젊은 모색》(2014)에서 선보인 <야뇨증>(2014)에서는 소변을 작품의 재료로 사용하셨는데요. 비슷한 색감과 재질을 가진 재료로 대체하지 않고, 직접 두 재료를 활용하신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젊은 모색》 전에 초대받았던 2014년은 제가 한창 미술계의 현실에 대한 회의감을 크게 느끼고 있었을 때였어요. 이미 각종 이미지가 세상을 뒤덮고 있는데, 제가 생성하는 이미지와 작품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또 제 작품을 잠깐 보고 돌아가는 관람객들에게 남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봤죠. 제 작품 앞에서 보는 이의 사고가 마비되는, 혹은 사유하게 되는 작품을 제작하고 싶었어요. 저는 감정이 일어나고, 신체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작업은 보는 이에게 물리적 변화를 일으키는 힘을 가진다고 인식하는데요, 이런 물리적 변화만이 하나의 유의미한 ‘사건’이라고 생각해요. 저의 초기 작업이 주로 불쾌감을 의도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죠.

<만월의 환영>에서는 뽀얗고 반짝반짝 빛이 나는 모유를 사용해 그 안에서의 스펙타클한 생명력과 생동감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전시장 바닥에 설치한 모유는 오래 방치된 까닭에 벌레들이 알을 까고 나오는데, 그 생동감을 통해 생명과 죽음이라는 것이 결국에는 관점의 차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Swipe to see more images

작가님 작업에서 두드러지는 죽음이라는 개념과 생명 의식에 대해서도 더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작업 초기부터 죽음을 주제로 삼은 작품을 많이 선보이셨는데, 출산 등의 경험이 삶, 탄생, 죽음에 대한 관점에 영향이 있었는지요?

일련의 개인사를 겪으며 죽음의 허상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죽음이라는 개념의 허위성을 깨닫고, 일시적인 삶에만 몰입되어 감정에 휘둘리는 인간을 마주하게 된 거죠. 어렸을 때부터 막연히 갖고 있던 제 존재에 대한 의구심이 여러 죽음을 마주하며 증폭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요.

출산을 경험하면서는 저와 타자의 관계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어요. 온전히 저의 피만을 먹고 자라나는 제 아이가 어디까지 저와 동일시될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고, (아이가) 커가면서는 완전히 타자가 되어가는 걸 목격할 수 있었죠.

이런 경험을 토대로 <뱃봉우리>(2018-현재) 작업을 했어요. 생각해 보면 배꼽은 모체와 연결되어 있을 때는 튀어나와 있잖아요. 그 연결고리(탯줄)를 끊으면 말려 들어가 우리가 가진 배꼽의 모양이 되는 거고요. 저는 이 개념에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관계를 대입해 보았어요. 우리가 태어남과 동시에 이전에 저희가 존재했던 다른 세계에서는 사라지고 현실 세계에 존재하게 된 것은 아닐지 하는 상상도 하게 되었고요. 다른 세계에서는 마이너스로, 현실에는 플러스가 된 거죠.


Swipe to see more images

<만인융릉>(2019)과 <가슴산>(2022)은 모두 흙을 재료로 사용하고, 같은 형태로 제작한 작품이예요. 제목을 다르게 붙인 데에는 별도의 이유가 있나요?

우선 산에 자주 오르고, 농사도 하게 되면서 흙을 가지고 작업을 해보고 싶었어요. 흙이 가진 원초적인 매체적 특징이 제 작업과 같은 궤를 한다고 느낀 거죠. <만인융릉>은 흙으로 작업한 첫 작품인데요, 정조대왕을 주제로 삼은 기획전시에 초대되어 제작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별도로 건조 처리를 거치지 않은, 자연에서 채취한 흙을 사용했다 보니 전시 도중 흙이 품고 있던 습기가 증발하면서 작은 언덕들 위에 젖꼭지와 유사한 형상이 생기는 걸 발견했어요. 이 형태가 너무 신기하고 마음에 들었어요. <만인융릉>이 가지고 있는 무거운 느낌이 완화되고, 오히려 친숙해지고 생동감이 느껴졌다랄까요. 흙이 완전히 건조된 이후임에도 불구하고, 젖꼭지로 인해 여성적이고 촉촉한 인상으로 남는 것도 좋았어요. 이 역시 죽음과 삶에 대한 이분법적인 경계를 흐림과 동시에 양쪽을 전치한다고 보았어요.  이후, 같은 작품을 선보일 때는 <가슴산>이라 칭하게 되었습니다. 


작가님의 개인전들을 보면 다양한 매체를 오가는 작업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현장에서 작품을 설치할 때 어디까지 개입하시는 편인가요?

저는 개별 작품이 전시에서 함께 만났을 때 형성하는 ‘정동’을 치밀하게 고려하는 편이에요. 관람객이 작품을 병렬식으로 보는 것을 넘어 전시장을 걷고 느끼고 보는 과정에서 어떠한 리듬으로 동기화가 되기를 바라요. 감상 행위 자체가 보는 사람에게 생명감을 더 증폭하고 부여하기를 바라는 거죠. 그러면 결과적으로 일종의 파도나 파동의 효과가 생기고 전시장을 나가서도 한동안은 이런 감각을 몸에 지니게 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2022년 진행한 김희수아트센터에서의 전시에서는 물결 모양을 공유하는 <강강술래>와 <가슴산>을 벽 하나를 가운데 두고 양측에 설치했어요. 그 벽을 둘러싼 공간에는 진양조장단에서 휘모리장단으로 넘어가듯 순차적인 증폭 장치의 역할을 하는 작업들이 놓여있었죠. <가슴산> 작품의 물결 모양은 소리를 흡수하는 형태인데, <강강술래>에서 나오는 소리를 완화해 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고, 잔잔한 파도 같은 형태가 시각적으로도 저음의 베이스 음역을 상기시키기도 했어요.

<가슴산>의 수평적 풍경이 보이는 시선의 연장선에는 <뱃봉우리>이라는 작품을 크게 설치했는데요, 배꼽이라는 마이너스(-)의 감각과 <가슴산>의 플러스(+)의 감각이 서로 상응하여 솟아나다 꺼지기를 반복하는 동세와 리듬을 형성하고자 했어요.



작가님의 작업에서는 사회적인 이슈들에 대한 문제의식도 자주 발견돼요. 여러 사건 중에서 작업을 위한 하나의 특정 사건을 선택할 선택 기준이 무엇인가요?

광범위한 사회적 문제 중에서도 제 입장에서 직감적으로 연루되어 있다고 느끼거나, 감정적인 동요를 일으키는 것들, 혹은 제 삶과 맞닿아 있다고 느끼는 문제와 현상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해요. 그런 작업은 대개 제가 이미 그 현상과 이슈에 사로잡혀 버려서 작업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이에요. 어떤 방식으로든 ‘처리'하지 않으면 묵인할 수가 없는 순간이 오더라고요. 제 작업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으면 하는지, 나아가 그 작업을 통해서 저 스스로 무엇을 해소할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문제들에) 대응하는 것 같아요.


최근에는 현대미술 잡지ㄷ떨 창간하셨어요. 미술에 관한 난해한 언어나 개념보다 작가의 개인적 삶과 정서를 담고 싶다는 취지가 인상 깊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오래된 미술 잡지를 읽고 수집하는 걸 즐겨왔어요. 1950년대 미술 잡지까지 거슬러 올라가 다양한 시기의 글들을 함께 읽는 공부 모임 <화랑강독>을 운영하고 있기도 해요. 옛 잡지에는 추상적인 개념어보다는 시대적 상황과 작가들의 생생한 일화를 느낄 수 있는 에세이나 인터뷰가 많아요. 개인의 경험이 깊이 각인된 글들에서 영감을 받아, 작가를 비롯한 필자들의 정서와 주관이 뚜렷한 글을 담는 잡지를 창간하게 되었습니다.






©  2023 Rad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