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가 예정된 시간으로부터 10분 전에 걸려 온 홍이현숙의 영상통화 화면 너머로는 녹음 진 한강공원의 여름 풍경이 나타났다. 최근 입주한 난지 창작 스튜디오로 걸어가는 길에 버드나무가 펼쳐진 한강의 모습을 나누고 싶다는 뜻이었다. 1988년의 첫 개인전 ⟪다하지 못한 애도⟫를 시작으로 ⟪폐경 의례⟫(2012), 최근 개인전 ⟪횡,추-푸⟫(2021) 에 이르기까지, 35년 간 부단히 전시와 작업 활동을 지속해 온 그에게 요즘의 낙은 공원 인근의 풍경이다. 그간 그의 작업은 에코 페미니즘, 혹은 가부장제에 대항하는 여성주의의 맥락에서 활발히 해석되어 왔다. 래이더는 이번 인터뷰를 통해 늘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뻗어 나가는 그의 현재 시선이 머무는 곳에 대해 알아보고자 했다.
홍이현숙은 설치, 영상, 퍼포먼스를 오가며 최근 제2회 프리즈 서울 필름(2023); 제14회 광주비엔날레(2023); 스페이스 씨 갤러리, 서울(2022); 아르코미술관, 서울(2021) 등 여러 무대에서 관객들에게 꾸준히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지금 화면 너머 보이는 곳이 정확히 어디인가요?
난지 한강공원이에요. 1년간 머물게 될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로 향하는 길이랍니다. 뒤에 버드나무들이 보이시나요? 참 예쁘지요? 버드나무는 물하고 땅의 경계에서 자라는 식물인데, 1980년대 초쯤 88서울 올림픽이 확정되고 정부에서 한강을 재정비하자는 의미에서 추진된 한강종합개발로 인해 모두 소거되었어요. 현재로서는 납득되지 않는 이유들로 풍부하게 자생하던 버드나무들을 모두 베어 없애고 콘크리트로 덮었다고 해요. 그렇게 사라졌던 버드나무들이 자연형 하천 복원 과정을 거치면서 이렇게나 무성하게 재생되었답니다. 참 반갑게도 말이지요.
난지도에서 작업하시면서 새롭게 흥미를 가지게 되신 것이 있나요?
요즘은 작업실에서 난지도에 있는 식물들을 채취해서 말리는 중이에요. 수분이 빠지면서 다른 어떤 것이 되는 느낌인 것 같아, 수분과 식물의 관계를 매일 체크하며 지내는 중입니다. 틈날 때면 따릉이를 타고 버드나무들을 보면서 풍경도 찍고, 버드나무가 나한테 하는 소리들을 듣기도 해요.
무엇보다 창문 너머 보이는 소각장과 쓰레기 매립 가스를 이용해 재생에너지를 만드는 공단이 있어요. 최근 부산 을숙도를 자주 방문하고 있는데, 을숙도는 난지도에 비해 자연 하천을 늦게 개방해서 버드나무가 훨씬 가늘어요. 그렇게 두 섬을 오가면서 닮은 점과 다른 점을 느껴보기도 하고, 두 섬의 버드나무들은 서로 교신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88년에 버드나무를 다 떠나보내고 당시로서는 나름 굉장히 아쉬워했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다 잊어버렸더라고요. 그런데 이렇게 다시 마주하고 반가운 마음이 드는 걸 보니 자연에서 만난 모든 것들을 그 순간에는 깊게 받아들이고 고민한 듯하지만 또 금세 잊고 일상을 사는 내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어요. 잊지 말아야 하는 데 잊혀지는 게 많다랄까요. 그런 의미에서 직관을 믿기보다 의식적으로 저편에서 생각을 자꾸 가져오고 상상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예측하지 못한 행운과도 같네요. 학부 때는 조소과를 졸업하셨던 것으로 알아요. 설치 미술로 전향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나요?
대학 시절에는 미술에 너무 푹 빠져있었고 불교와 산에 관심이 많았어요. 고등학교 때 하지 못했던 것들을 갈망했다랄까요. 절에서 불교 공부 열심히 하면서 1,080배나 열흘 단식도 하고, 산에서는 클라이밍도 꾸준히 다니고 그랬어요. 작업과 관련해서는 흙을 만지는 과정을 참 좋아했습니다. 그러다 공간 개념에 대한 관심이 생겨 국립극장에서 무대미술을 공부했어요. 때마침 그때 큰 스케일의 스펙터클한 인스톨레이션 (installation) 개념이 서구에서 처음 들어오게 되어 설치미술을 접하게 되었고, 그렇게 공간을 구축하는 것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어요. 조각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거든요.
흙, 불교, 산은 작가님 작품에 꾸준히 등장하는 모티프입니다. 1988년에 첫 개인전인 ⟪다하지 못한 애도⟫에서 애도의 대상 역시 버드나무들이 아니었던가요?
맞아요, 버드나무를 이용한 첫 전시이자 나무들의 죽음을 애도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된 전시였어요. 북한산 인수봉이 마주 보이는 뒷산 중턱에 살고 있었어요. 집으로 가는 대로변에 버드나무가 낭창하게 서 있을 때라 가끔 손을 흔들며 지나가곤 했었죠. 그런데 1988년 봄, 앞에서 말한 정부 사업으로 인해 동네에 있던 버드나무가 글쎄, 하루아침에 잘린 채 길가에 나뒹구는 신세가 된 거예요. 구청을 통해 수소문했더니 인천에 있는 어떤 이쑤시개 공장에 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무작정 그 공장을 찾아갔습니다. 막상 그 잘려진 버드나무들을 보니 눈물이 나면서 쓰다듬고 애달퍼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지요. 마침 그때 그 모습을 본 사장님이 자기네 회사에서 로고가 필요한데 그거를 만들어 주면 나무를 좀 주시겠다고 하는 거예요! 저녁 늦은 시간까지 공장 사무실 한 귀퉁이에서 그 회사 로고를 만들어주고 트럭(자그만치 5톤) 가득 버드나무를 싣고 의기양양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있어요. 그 나무들을 가지고 저의 첫 개인전을 했는데, 나무들이 벽을 뚫고 들어가 그것들이 그 속에서 시선으로 서로 연결되어 다시 저쪽 벽에서 나오고 결국 전시장을 포함한 빌딩 전체의 공간을 상상케하는 설치 작업이었어요. 그런 식의 설치형 전시가 당시에는 좀 낯설은 전시이긴 했어요. 당시 큐레이터를 맡았던 최정화씨의 배려덕분에 잘 끝마쳤던 것같아요.
그때부터 대규모 설치 작업을 시작하시게 되셨군요. 1995년, 미술회관(현 아르코미술관)에서 두 번째 개인전인 ⟪은닉된 에너지⟫부터 본격적으로 옷 소재가 등장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 재질이나 특성에 있어 이전 소재였던 나무와는 꽤나 상반되는 재료 아닌가요?
1993년에 저희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서 산더미처럼 남겨주신 옷을 가지고 한 전시예요. 환갑을 일주일 앞두고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이름을 홍이현숙으로 쓰기 시작하기도 했었죠. 평생을 옷 장수로 사셨고 늘 옷을 아름답게 입는 것을 좋아하시던 분이었어요. 아버지가 떠나시면서 남긴 옷이 지하창고에 가득 있었는데, 일 년 정도는 그 옷을 버리지도 못하고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겠더라고요. 그 옷들을 어떻게 써야 아버지가 제일 기뻐하실지 고민하다 저만의 의식을 하기로 했어요. 미술관의 북쪽 한편에 아버지가 남기신 옷들을 가지런히 쌓아 올리고 다른 한 편에는 작은 관들 안에 흰옷을 넣어 바닥에 길을 만들었어요. 길 끝에 아버지가 계신다고 생각했죠. 맞닿아 있는 벽에는 아버지를 기리는 선시(禪詩)가 담겼고요.
말씀대로 나무와 달리, 옷은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는 유연함을 지녔어요. 2년 후, 국립극장에서 진행한 설치 작업도 소재에 있어서 소프트 스컬프처(Soft sculpture)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시간이 지나며 설치 미술에 더욱 관심이 생겨서 힘에 부치는 작업도 많이 했어요. 2002년도에는 30 미터가 훌쩍 넘는 오두산 통일 전망대를 과자 봉지로 둘러싸는 등, 소박하고 작은 스케일보다 큰 공간을 휘어잡고 스펙터클한 작업처럼 말이에요.
첫 개인전 이후로 국립극장 (1997), 예술의 전당 (1999), 나아가 현재는 사라지고 없는 인사동 육교(2000)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공공장소를 대상으로 설치 작업을 하시다 ⟪풀과 털⟫(2005)을 통해 처음으로 영상 매체를 선보이신 걸로 알고 있어요. 여덟 번째 개인전이자 화이트 큐브 안에서는 여는 7여 년 만의 전시였던 만큼, 많은 주목을 받으셨던 걸로 기억해요. 표현하고자 했던 소재에 변화가 생기셨던 걸까요?
인사동에 위치한 대안공간 풀에서 열린 전시였어요. 전시장 안에 저만의 방을 펼쳐 만들었고, 그 안에 총 네 개의 영상[<날개>, <물주기>, <체조>, <물구나무 서기>(2005))과 설치물을 전시했었죠. 방식에 있어서는 그때까지 했던 스펙타클한 야외 작업에서 전시장 안으로 작업을 들여왔고, 소재에 있어서는 보다 내면화된,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했어요. 당시 연년생 꼬마 둘을 키우던 저의 일상은 저의 행동뿐만 아니라 사고의 반경조차 좁혀 놓은 것 같았어요. 조금만 다른 생각을 하면 아이들이 다치기 일쑤다 보니 늘 일상과 작업 사이에서 팽팽한 균형을 유지해야 했죠. 작가로서 앞으로, 혹은 옆으로 튀어 나가고 싶었지만, 일상이 저를 잡고 놓아주질 않았다랄까요. 그러면서 자연스레 여성과 아줌마로서의 계급과 사회적 위치, 홀로됨에 대한 이야기,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고립감, 여성으로 일상에서 겪는 돌봄, 헌신, 살림에 대한 제 생각들을 다루게 되었어요.
지금까지의 작업들이 큰 스케일의 야외작업에서 더욱 개인적인 서사를 중심으로 하는 작업으로 이동했다면, 이번 프리즈 필름 주간 동안 선보이시는 세 점의 작업에서는 또 다른 양상이 발견되는 것 같아요.
<사자자세>(2017)와 <고래자세> (2018), <석광사 근방> (2020)이 상영될 예정이에요. 세 점 모두 사자와 고래, 그리고 길고양이라는 인간이 아닌 존재들과 상호작용하는 작업들이죠. 그들의 언어와 몸짓을 흉내 내는 모습들이 나오는데요, 그게 제가 처음에 언급 드렸던 상상의 개념과도 연결되는 지점이에요.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과 세상 너머, 우리가 보지 못하는 영역에 대해 자꾸 상상을 하는 거죠. 예술은 곧 비약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수단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예술이 필요한 거니까요. 무엇보다 세상을 늘 낯설게 보려고 노력해요. 낯설게 보기 위해서는 내 주변이 어떤지,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차리려는 시도가 필요합니다. 알아차려야 (부족한 점을) 보강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설치하는데 오프닝을 못 갔어요.
왜 못 가셨나요?
스튜디오 바로 옆에 산악 체험 센터가 있는데, (인터뷰 당시) 현재 세계 유소년 클라이밍 대회 개최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해요. 그런데 매일 스튜디오를 오가며 우연히 그 개최 준비 과정을 보게 되었는데 그 루트 세팅 과정이 너무 신기하고 흥미로운 거예요. 벽에 있는 바위들이 공학적인 계산을 바탕으로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클라이머가 직접 떨어짐과 올라감을 반복해 가며 선수의 체형에 맞게 조정해 간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어요. 루트 세터라는 역할이 따로 있다는 점도 말이에요. 광주 비엔날레에 출품됐었던 월출산 등반 과정을 담은 <지금 당신이 만지는 것>(2019, 2022)이 떠오르기도 했어요. 아무튼 이 신기한 광경을 기필코 촬영하고 싶어 오프닝에 갈 수 없었습니다. 버드나무와 클라이밍을 이렇게 돌고 돌아 마주하게 되어 참 반가워요.
이번 프리즈 필름 기간동안 아마도 예술공간에서 홍이현숙의 <석광사 근방>(2020)과 <고래 자세>(2018), <사자 자세>(2017)가 상영되었다. 영상은 다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frieze.com/ko/article/hong-lee-hyun-sook
홍이현숙은 설치, 영상, 퍼포먼스를 오가며 최근 제2회 프리즈 서울 필름(2023); 제14회 광주비엔날레(2023); 스페이스 씨 갤러리, 서울(2022); 아르코미술관, 서울(2021) 등 여러 무대에서 관객들에게 꾸준히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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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화면 너머 보이는 곳이 정확히 어디인가요?
난지 한강공원이에요. 1년간 머물게 될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로 향하는 길이랍니다. 뒤에 버드나무들이 보이시나요? 참 예쁘지요? 버드나무는 물하고 땅의 경계에서 자라는 식물인데, 1980년대 초쯤 88서울 올림픽이 확정되고 정부에서 한강을 재정비하자는 의미에서 추진된 한강종합개발로 인해 모두 소거되었어요. 현재로서는 납득되지 않는 이유들로 풍부하게 자생하던 버드나무들을 모두 베어 없애고 콘크리트로 덮었다고 해요. 그렇게 사라졌던 버드나무들이 자연형 하천 복원 과정을 거치면서 이렇게나 무성하게 재생되었답니다. 참 반갑게도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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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지도에서 작업하시면서 새롭게 흥미를 가지게 되신 것이 있나요?
요즘은 작업실에서 난지도에 있는 식물들을 채취해서 말리는 중이에요. 수분이 빠지면서 다른 어떤 것이 되는 느낌인 것 같아, 수분과 식물의 관계를 매일 체크하며 지내는 중입니다. 틈날 때면 따릉이를 타고 버드나무들을 보면서 풍경도 찍고, 버드나무가 나한테 하는 소리들을 듣기도 해요.
무엇보다 창문 너머 보이는 소각장과 쓰레기 매립 가스를 이용해 재생에너지를 만드는 공단이 있어요. 최근 부산 을숙도를 자주 방문하고 있는데, 을숙도는 난지도에 비해 자연 하천을 늦게 개방해서 버드나무가 훨씬 가늘어요. 그렇게 두 섬을 오가면서 닮은 점과 다른 점을 느껴보기도 하고, 두 섬의 버드나무들은 서로 교신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88년에 버드나무를 다 떠나보내고 당시로서는 나름 굉장히 아쉬워했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다 잊어버렸더라고요. 그런데 이렇게 다시 마주하고 반가운 마음이 드는 걸 보니 자연에서 만난 모든 것들을 그 순간에는 깊게 받아들이고 고민한 듯하지만 또 금세 잊고 일상을 사는 내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어요. 잊지 말아야 하는 데 잊혀지는 게 많다랄까요. 그런 의미에서 직관을 믿기보다 의식적으로 저편에서 생각을 자꾸 가져오고 상상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예측하지 못한 행운과도 같네요. 학부 때는 조소과를 졸업하셨던 것으로 알아요. 설치 미술로 전향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나요?
대학 시절에는 미술에 너무 푹 빠져있었고 불교와 산에 관심이 많았어요. 고등학교 때 하지 못했던 것들을 갈망했다랄까요. 절에서 불교 공부 열심히 하면서 1,080배나 열흘 단식도 하고, 산에서는 클라이밍도 꾸준히 다니고 그랬어요. 작업과 관련해서는 흙을 만지는 과정을 참 좋아했습니다. 그러다 공간 개념에 대한 관심이 생겨 국립극장에서 무대미술을 공부했어요. 때마침 그때 큰 스케일의 스펙터클한 인스톨레이션 (installation) 개념이 서구에서 처음 들어오게 되어 설치미술을 접하게 되었고, 그렇게 공간을 구축하는 것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어요. 조각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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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불교, 산은 작가님 작품에 꾸준히 등장하는 모티프입니다. 1988년에 첫 개인전인 ⟪다하지 못한 애도⟫에서 애도의 대상 역시 버드나무들이 아니었던가요?
맞아요, 버드나무를 이용한 첫 전시이자 나무들의 죽음을 애도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된 전시였어요. 북한산 인수봉이 마주 보이는 뒷산 중턱에 살고 있었어요. 집으로 가는 대로변에 버드나무가 낭창하게 서 있을 때라 가끔 손을 흔들며 지나가곤 했었죠. 그런데 1988년 봄, 앞에서 말한 정부 사업으로 인해 동네에 있던 버드나무가 글쎄, 하루아침에 잘린 채 길가에 나뒹구는 신세가 된 거예요. 구청을 통해 수소문했더니 인천에 있는 어떤 이쑤시개 공장에 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무작정 그 공장을 찾아갔습니다. 막상 그 잘려진 버드나무들을 보니 눈물이 나면서 쓰다듬고 애달퍼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지요. 마침 그때 그 모습을 본 사장님이 자기네 회사에서 로고가 필요한데 그거를 만들어 주면 나무를 좀 주시겠다고 하는 거예요! 저녁 늦은 시간까지 공장 사무실 한 귀퉁이에서 그 회사 로고를 만들어주고 트럭(자그만치 5톤) 가득 버드나무를 싣고 의기양양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있어요. 그 나무들을 가지고 저의 첫 개인전을 했는데, 나무들이 벽을 뚫고 들어가 그것들이 그 속에서 시선으로 서로 연결되어 다시 저쪽 벽에서 나오고 결국 전시장을 포함한 빌딩 전체의 공간을 상상케하는 설치 작업이었어요. 그런 식의 설치형 전시가 당시에는 좀 낯설은 전시이긴 했어요. 당시 큐레이터를 맡았던 최정화씨의 배려덕분에 잘 끝마쳤던 것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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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대규모 설치 작업을 시작하시게 되셨군요. 1995년, 미술회관(현 아르코미술관)에서 두 번째 개인전인 ⟪은닉된 에너지⟫부터 본격적으로 옷 소재가 등장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 재질이나 특성에 있어 이전 소재였던 나무와는 꽤나 상반되는 재료 아닌가요?
1993년에 저희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서 산더미처럼 남겨주신 옷을 가지고 한 전시예요. 환갑을 일주일 앞두고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이름을 홍이현숙으로 쓰기 시작하기도 했었죠. 평생을 옷 장수로 사셨고 늘 옷을 아름답게 입는 것을 좋아하시던 분이었어요. 아버지가 떠나시면서 남긴 옷이 지하창고에 가득 있었는데, 일 년 정도는 그 옷을 버리지도 못하고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겠더라고요. 그 옷들을 어떻게 써야 아버지가 제일 기뻐하실지 고민하다 저만의 의식을 하기로 했어요. 미술관의 북쪽 한편에 아버지가 남기신 옷들을 가지런히 쌓아 올리고 다른 한 편에는 작은 관들 안에 흰옷을 넣어 바닥에 길을 만들었어요. 길 끝에 아버지가 계신다고 생각했죠. 맞닿아 있는 벽에는 아버지를 기리는 선시(禪詩)가 담겼고요.
말씀대로 나무와 달리, 옷은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는 유연함을 지녔어요. 2년 후, 국립극장에서 진행한 설치 작업도 소재에 있어서 소프트 스컬프처(Soft sculpture)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시간이 지나며 설치 미술에 더욱 관심이 생겨서 힘에 부치는 작업도 많이 했어요. 2002년도에는 30 미터가 훌쩍 넘는 오두산 통일 전망대를 과자 봉지로 둘러싸는 등, 소박하고 작은 스케일보다 큰 공간을 휘어잡고 스펙터클한 작업처럼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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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개인전 이후로 국립극장 (1997), 예술의 전당 (1999), 나아가 현재는 사라지고 없는 인사동 육교(2000)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공공장소를 대상으로 설치 작업을 하시다 ⟪풀과 털⟫(2005)을 통해 처음으로 영상 매체를 선보이신 걸로 알고 있어요. 여덟 번째 개인전이자 화이트 큐브 안에서는 여는 7여 년 만의 전시였던 만큼, 많은 주목을 받으셨던 걸로 기억해요. 표현하고자 했던 소재에 변화가 생기셨던 걸까요?
인사동에 위치한 대안공간 풀에서 열린 전시였어요. 전시장 안에 저만의 방을 펼쳐 만들었고, 그 안에 총 네 개의 영상[<날개>, <물주기>, <체조>, <물구나무 서기>(2005))과 설치물을 전시했었죠. 방식에 있어서는 그때까지 했던 스펙타클한 야외 작업에서 전시장 안으로 작업을 들여왔고, 소재에 있어서는 보다 내면화된,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했어요. 당시 연년생 꼬마 둘을 키우던 저의 일상은 저의 행동뿐만 아니라 사고의 반경조차 좁혀 놓은 것 같았어요. 조금만 다른 생각을 하면 아이들이 다치기 일쑤다 보니 늘 일상과 작업 사이에서 팽팽한 균형을 유지해야 했죠. 작가로서 앞으로, 혹은 옆으로 튀어 나가고 싶었지만, 일상이 저를 잡고 놓아주질 않았다랄까요. 그러면서 자연스레 여성과 아줌마로서의 계급과 사회적 위치, 홀로됨에 대한 이야기,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고립감, 여성으로 일상에서 겪는 돌봄, 헌신, 살림에 대한 제 생각들을 다루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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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의 작업들이 큰 스케일의 야외작업에서 더욱 개인적인 서사를 중심으로 하는 작업으로 이동했다면, 이번 프리즈 필름 주간 동안 선보이시는 세 점의 작업에서는 또 다른 양상이 발견되는 것 같아요.
<사자자세>(2017)와 <고래자세> (2018), <석광사 근방> (2020)이 상영될 예정이에요. 세 점 모두 사자와 고래, 그리고 길고양이라는 인간이 아닌 존재들과 상호작용하는 작업들이죠. 그들의 언어와 몸짓을 흉내 내는 모습들이 나오는데요, 그게 제가 처음에 언급 드렸던 상상의 개념과도 연결되는 지점이에요.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과 세상 너머, 우리가 보지 못하는 영역에 대해 자꾸 상상을 하는 거죠. 예술은 곧 비약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수단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예술이 필요한 거니까요. 무엇보다 세상을 늘 낯설게 보려고 노력해요. 낯설게 보기 위해서는 내 주변이 어떤지,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차리려는 시도가 필요합니다. 알아차려야 (부족한 점을) 보강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설치하는데 오프닝을 못 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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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못 가셨나요?
스튜디오 바로 옆에 산악 체험 센터가 있는데, (인터뷰 당시) 현재 세계 유소년 클라이밍 대회 개최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해요. 그런데 매일 스튜디오를 오가며 우연히 그 개최 준비 과정을 보게 되었는데 그 루트 세팅 과정이 너무 신기하고 흥미로운 거예요. 벽에 있는 바위들이 공학적인 계산을 바탕으로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클라이머가 직접 떨어짐과 올라감을 반복해 가며 선수의 체형에 맞게 조정해 간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어요. 루트 세터라는 역할이 따로 있다는 점도 말이에요. 광주 비엔날레에 출품됐었던 월출산 등반 과정을 담은 <지금 당신이 만지는 것>(2019, 2022)이 떠오르기도 했어요. 아무튼 이 신기한 광경을 기필코 촬영하고 싶어 오프닝에 갈 수 없었습니다. 버드나무와 클라이밍을 이렇게 돌고 돌아 마주하게 되어 참 반가워요.
이번 프리즈 필름 기간동안 아마도 예술공간에서 홍이현숙의 <석광사 근방>(2020)과 <고래 자세>(2018), <사자 자세>(2017)가 상영되었다. 영상은 다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frieze.com/ko/article/hong-lee-hyun-s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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