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 천은 언어가 소비되고 체계화되는 주류 집단에서 시선을 돌려, 오랜 시간 고정불변으로 여겨졌던 언어의 특성들을 해체하는 ‘탈언어화(unlanguaging)’의 방법론으로 작업에 접근한다. 영상, 설치, 퍼포먼스를 오가며 시각예술의 언어 속에 작가로서의 문제의식을 녹여낸 그의 작업은 늘 우리의 주변에 있었지만 보지 못했던, 혹은 표현하기 어려웠던 새로운 세계에 주목할 수 있게 해준다.
그는 최근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 비엔날레를 통해 한국에서 첫 개인전을 선보였다. 현재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그는 KADIST, 샌프란시스코(2023); 화이트채플 갤러리, 런던(2023); 볼룸 마파, 텍사스(2023);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2022); 그리고 토론토 현대미술관(2021) 등에서 열린 전시에 참여한 바 있으며 향후 서울과 뉴욕을 오가는 활발한 활동이 기대되는 작가이다.
이번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를 통해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개인전을 선보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어떠셨나요?
6개월 동안 오로지 작업만을 위해 한국에 머문 것은 근 6년 만에 처음이라, 굉장히 색다른 경험이었어요. 많은 것을 배우고 느껴서 (전시 이후에도) 한동안 한국에 머물 생각을 하는 요즘입니다. 특히, 조상들의 문화나 민속 문학과 같이 과거와 관련된 자료를 수집할 때, 접근할 수 있는 정보의 양과 질이 뉴욕에 있을 때 비해 현저히 차이가 나더라고요. 무당에게서 직접 종이 오리기 기술을 배운다거나 할머니가 저를 위해 남기신 편지, 일기와 같은 자료들에 접근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한국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부분들이었어요.
이번 전시 《시, language for new moons》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전작이 포함된 전시인가요?
이번 전시는 2020년도 작업부터 그 이후의 작업을 조망하고 있어요. 그 이유는 최근 3년간 일종의 철학적인 깨달음을 얻으며 제 작업이 큰 변화를 거쳤기 때문이에요. 제 작업에서 자주 등장하는 저의 할머니가 그 변화의 가운데에 있었어요. 제 할머니는 호적에도 기록되지 않았던, 소위 말해 역사화 되지 않은 전직 전통 무용수였어요. 결혼으로 인해 결국 꿈을 포기해야 했던 할머니는 훗날 수도승이 되셨고, 세상을 떠나시는 날까지 절에 계셨어요. 2017년에 세상을 떠나신 이후로 제 꿈에 할머니가 나타나시는 등, 일련의 경험들로 할머니와 더 진심 어린 소통을 시작하게 된 것 같아요. 이를 계기로 비선형적인 시공간과 서사에 대해서도 한층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었고요. 이번 전시에서 초기작부터 시간순대로 저의 작업을 보여주기보다는 제 예술관의 본질과 앞으로의 방향성을 잘 드러내는 작업을 위주로 선보인 것도 같은 이유예요.
초기작과 비교했을 때, 그러한 일련의 경험들이 전반적인 예술관에도 영향을 미쳤나요?
시각적인 면과 보이지 않는 영적인 것을 다룬다는 점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지만 본질은 변함이 없다고 생각해요. 언어에 대해서 여전히 같은 질문을 던지고 같은 문제들을 다루고 있거든요. 특히 언어와 권력, (식민주의적) 이데올로기, 그리고 사회문화적인 구조 간의 복잡다단하게 얽힌 관계들을 풀어내려(unfix) 한다는 점에서요. 최근에는 물리적 경계를 초월하는 언어의 특성에 관해 관심이 생겼어요. 그러다 보니 제 작업 또한 가시적인 차원을 넘어 범우주적인 차원으로 확장될 수 있는 언어의 가능성에 대해 다루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고요.
저에게 시학(poetics)이 매우 중요한 생성의 영역인 만큼, 저의 작업 역시 자연스레 (시학과) 많은 연관성을 가지게 되었어요. 개인적인 차원의 역사를 다루거나 민속 문학을 차용 및 변형시키는 방법 등을 통해서 말이죠. 제가 특히 주목하는 부분은 언어의 다양한 텍스처예요. 역사적으로 공식화(혹은 기록화)된 내러티브를 (비)언어화, 변형, 오역, 그리고 혼잣말과 같은 여러 갈래의 언어적 텍스처들을 통해 탈중심화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늘 고민하고 있어요. 이를 통해 저만의 방식으로 언어, 그리고 그 안에 함의된 풍부한 우주론들을 지도화(mapping)하는 것이죠.
그게 가능했던 이유 중 일부는 작가님이 한국과 미국, 두 문화권에 대한 이해도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있게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한국 문화와 역사에 대한 작업을 할 때, 단순히 새로움 만을 위해 전통적인 요소를 활용하여 이질화, 혹은 타자화하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고요.
한창 가치관이 형성될 시절을 한국에서 보냈기에 민속 문학과 같은 한국의 전통적 요소들을 (백인 중심적 시선에서) 타자화하지 않고 재해석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스스로도 늘 작업을 하며 어떻게 하면 재해석에 깊이를 더할 수 있을지 자문하기도 하고요. 제 작업에서는 (문화적) 변형과 번역, 그리고 번역될 수 없는 영역이 중점적인 부분을 차지해요. 한국과 서구를 오가면서 제 작업이 각 문화권에서 다르게 수용되는 모습을 관찰하는 게 흥미로웠어요. 최근에 느낀 건 디아스포라 작가라고 해서 꼭 특정 사회나 문화에 편승해야 하는 건 아니라는 점이에요. 한쪽에 편승하지 않고 양측을 포용하고 담을 수 있는 거죠. 한국에 당분간 조금 더 머물고 싶은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에요. 유연하게 많은 요소를 담을 수 있는 이런 저의 면을 더 들여다보고 그 안의 순환성을 찾고 싶어요.
이번 비엔날레 참여작들에 대해 더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전시 공간에 들어서면 저의 최근작들인 <시: concrete poem>(2023)과 일종의 프리 스탠딩 영상 조각인 <시: sea (2022)>를 마주하실 수 있어요. 대형 크기의 조각적 드로잉인 <시: concrete poem> 연작은 무당 분들께 직접 전수받은 종이 오리기 기법을 저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작업이에요. 한지를 흑연을 통해 선으로 빼곡히 채우고 제가 쓴 아세믹(asemic)*한 글들을 세심하게 오려내는 과정을 거친, 명상적이고 수행적인 시간의 결과물이기도 해요. 언어의 디아스포릭한 특성에 대한 고민이 담긴 번역 불가의 영역을 시각화 하고 싶었어요. 종이 오리기를 수단으로 선택한 이유는 그림자, 여백, 침묵, 시간을 통한 소통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굿판이 벌어지는 동안 무당들은 종이를 오려 혼들을 소환하고, 의식의 막바지에 태우는 과정을 거친다고 해요. 이처럼 다른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포털로서 종이 오리기를 사용한다는 점이 좋기도 했어요. 언어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고 느꼈거든요.
저의 가장 최근 단편 영상인 <오 더스트>(2023)와 <술래 SULLAE>(2020), 바닥에 영상이 투영된 플로어 비디오(floor video) <And verse (혼잣말의 언어 그리고 cosmos)>도 전시장에서 만나보실 수 있어요. <탈언어화의 악보>와 더불어 할머니가 저에게 남긴 글들과 그에 대한 저의 답변을 소재로 한, 시공간을 초월한 대화가 담긴 조각 아상블라주도 함께 전시되어 있습니다.
*asemic이란 상징 불능의 무언가를 뜻하는 말로, 해독 가능한 단어로 이루어지지 않은 개방된 의미론적 글쓰기를 asemic writing이라고 칭한다.
작업 전반에 걸쳐 소재와 설치 방식과 관련하여 유동적인, 움직이는 요소들이 많이 눈에 띄어요. <오 더스트>(2023)와 <시: sea>(2022)에 등장하는 흐르는 물의 수면, <O (for various skies)>(2021)에서의 흘러가는 구름, <술래 SULLAE>(2020)에서 등장하는 강강술래, <tongues of fire>(2022-23)에서 스크린 속 화면을 비추는 바닥에 설치된 거울들처럼 말이죠. 작가님이 예전 다른 매체에서 언어에 대해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고 열린 결말 형식의 의미 생성의 과정’이라고 표현했던 구절이 생각나기도 해요. 소재와 설치 방식들에 있어 유동성이 가지는 중요성이 큰가요?
그럼요, 설치는 저에게 작품 자체만큼이나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에요. 예를 들어,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가벽만 새로 네 점을 세웠어요. 그중 하나는 한복 원단을 소재로 한 대형의 투명한 벽인데요, 제 영상 작업인 <술래 SULLAE>와 <오 더스트>로 연결되는 일종의 반투명한 통로 역할을 하는 벽이에요. 저에게는 이번 전시에서 언어의 불투명성과 미묘함, 그리고 텍스처들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특히나 중요했어요. 유동적으로 흘러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전시를 기획하고 싶었거든요. 마치 한 편의 시를 걸어서 체험하는 것처럼요.
저는 <탈언어화의 악보>(2021-현재) 연작이 특히 흥미로워요. 영상 중심인 다른 작업에 비해 구분되는 작업 방식과 매체도 그렇고, 설치 방식에 있어서도요. 특히 시각적으로 해독할 수 있는 악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다른 분야의 아티스트들과 협업 하에 퍼포먼스를 진행한 것으로 알아요. 이에 대해 더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최근 몇 년간, 드로잉은 제 작업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어요. 저에게 영상과 드로잉은 활용된 매체는 다르지만, 두 작업 방식 모두 일종의 쓰여진 표현 형태라는 점에서 동일해요. 시각적인 요소를 시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도요. <탈언어화의 악보>는 국제 공용어인 영어를 파편화하고 추상화해서 새로운 추상 형태로 표현한—중첩되고 접히고 고정되는 형식을 사용한—조각적 드로잉 연작이에요. 로마자가 박힌 스텐실을 사용해 영어가 아닌 언어의 새로운 우주론들을 지도화하고자 했어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언어를 출발점으로 삼아, 언어와 그 안에 함축된 의미들의 비선형적 통로를 나타낸 추상 악보인 셈이에요.
말씀대로 해당 연작은 다른 분야의 아티스트들과 협업 아래 연주되고 시연되기도 해요. 아티스트들을 초대해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자유롭게 악보를 연주하고 “번역”하게끔 해요. 퍼포먼스가 어떻게 진행될지 당일까지 저도 예측할 수 없는 거죠. 첫 협업은 저의 친구이자 아티스트인 Li(sa) E.Harris와 함께 진행되었고, 다음은 JJJJJerome Ellis에 의해 시연될 예정이에요. 많이 기대 중입니다.
설치 전경에서 보이는, 악보들 사이 사이에 놓인 흑연 패널들은 쉼표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처럼 느껴져요.
아름다운 해석이에요. 악보들은 그리고 지우는 과정이 반복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저는 지우는 행위를 시각화할 방법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해왔어요. 벽 위에 흑연으로 문지른 흔적들은 프레임 된 악보들과 동등한 역할을 해요. 언급되는 것과 언급되지 않는 것, 그 사이의 간극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거든요. 흑연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끔 촉각화 시킨 셈이죠.
언젠가 다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And verse (혼잣말의 언어 그리고 cosmos)>(2022)와 관련하여, 탈언어화의 과정이 작가님께는 언어가 안전하고 사적으로 느껴지게 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고 하셨던 걸 기억해요. 그러한 묘사가 역설적으로 언어의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측면을 동시에 환기하기도 하는 것 같아 인상 깊었어요.
언어는 굉장히 복합적이자 강력한 개념이에요. 너무나 많은 것을 담을 수 있으면서도 풀어낼 수 있는 존재죠. 저 역시 여전히 언어를 하나의 고유한 개체로 존중하고 배우려고 노력 중이에요. (언어만의) 고유한 성질과 기운 등을요. 제국주의의 이면의 식민주의적 권력들로 인해 언어는 너무 오랜 시간 무기화되어 왔어요. 세계 공용어인 영어가 그 대표적인 예시이고요. 저에게 “탈언어화”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어요. 제게 그 과정은 얽혔던 것들을 풀어내고 새로운 길과 가능성을 찾아내는, 궁극적으로 시를 향해 한 걸음 더 다가가는 과정이거든요.
그는 최근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 비엔날레를 통해 한국에서 첫 개인전을 선보였다. 현재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그는 KADIST, 샌프란시스코(2023); 화이트채플 갤러리, 런던(2023); 볼룸 마파, 텍사스(2023);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2022); 그리고 토론토 현대미술관(2021) 등에서 열린 전시에 참여한 바 있으며 향후 서울과 뉴욕을 오가는 활발한 활동이 기대되는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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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를 통해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개인전을 선보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어떠셨나요?
6개월 동안 오로지 작업만을 위해 한국에 머문 것은 근 6년 만에 처음이라, 굉장히 색다른 경험이었어요. 많은 것을 배우고 느껴서 (전시 이후에도) 한동안 한국에 머물 생각을 하는 요즘입니다. 특히, 조상들의 문화나 민속 문학과 같이 과거와 관련된 자료를 수집할 때, 접근할 수 있는 정보의 양과 질이 뉴욕에 있을 때 비해 현저히 차이가 나더라고요. 무당에게서 직접 종이 오리기 기술을 배운다거나 할머니가 저를 위해 남기신 편지, 일기와 같은 자료들에 접근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한국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부분들이었어요.
이번 전시 《시, language for new moons》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전작이 포함된 전시인가요?
이번 전시는 2020년도 작업부터 그 이후의 작업을 조망하고 있어요. 그 이유는 최근 3년간 일종의 철학적인 깨달음을 얻으며 제 작업이 큰 변화를 거쳤기 때문이에요. 제 작업에서 자주 등장하는 저의 할머니가 그 변화의 가운데에 있었어요. 제 할머니는 호적에도 기록되지 않았던, 소위 말해 역사화 되지 않은 전직 전통 무용수였어요. 결혼으로 인해 결국 꿈을 포기해야 했던 할머니는 훗날 수도승이 되셨고, 세상을 떠나시는 날까지 절에 계셨어요. 2017년에 세상을 떠나신 이후로 제 꿈에 할머니가 나타나시는 등, 일련의 경험들로 할머니와 더 진심 어린 소통을 시작하게 된 것 같아요. 이를 계기로 비선형적인 시공간과 서사에 대해서도 한층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었고요. 이번 전시에서 초기작부터 시간순대로 저의 작업을 보여주기보다는 제 예술관의 본질과 앞으로의 방향성을 잘 드러내는 작업을 위주로 선보인 것도 같은 이유예요.
초기작과 비교했을 때, 그러한 일련의 경험들이 전반적인 예술관에도 영향을 미쳤나요?
시각적인 면과 보이지 않는 영적인 것을 다룬다는 점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지만 본질은 변함이 없다고 생각해요. 언어에 대해서 여전히 같은 질문을 던지고 같은 문제들을 다루고 있거든요. 특히 언어와 권력, (식민주의적) 이데올로기, 그리고 사회문화적인 구조 간의 복잡다단하게 얽힌 관계들을 풀어내려(unfix) 한다는 점에서요. 최근에는 물리적 경계를 초월하는 언어의 특성에 관해 관심이 생겼어요. 그러다 보니 제 작업 또한 가시적인 차원을 넘어 범우주적인 차원으로 확장될 수 있는 언어의 가능성에 대해 다루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고요.
저에게 시학(poetics)이 매우 중요한 생성의 영역인 만큼, 저의 작업 역시 자연스레 (시학과) 많은 연관성을 가지게 되었어요. 개인적인 차원의 역사를 다루거나 민속 문학을 차용 및 변형시키는 방법 등을 통해서 말이죠. 제가 특히 주목하는 부분은 언어의 다양한 텍스처예요. 역사적으로 공식화(혹은 기록화)된 내러티브를 (비)언어화, 변형, 오역, 그리고 혼잣말과 같은 여러 갈래의 언어적 텍스처들을 통해 탈중심화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늘 고민하고 있어요. 이를 통해 저만의 방식으로 언어, 그리고 그 안에 함의된 풍부한 우주론들을 지도화(mapping)하는 것이죠.
그게 가능했던 이유 중 일부는 작가님이 한국과 미국, 두 문화권에 대한 이해도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있게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한국 문화와 역사에 대한 작업을 할 때, 단순히 새로움 만을 위해 전통적인 요소를 활용하여 이질화, 혹은 타자화하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고요.
한창 가치관이 형성될 시절을 한국에서 보냈기에 민속 문학과 같은 한국의 전통적 요소들을 (백인 중심적 시선에서) 타자화하지 않고 재해석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스스로도 늘 작업을 하며 어떻게 하면 재해석에 깊이를 더할 수 있을지 자문하기도 하고요. 제 작업에서는 (문화적) 변형과 번역, 그리고 번역될 수 없는 영역이 중점적인 부분을 차지해요. 한국과 서구를 오가면서 제 작업이 각 문화권에서 다르게 수용되는 모습을 관찰하는 게 흥미로웠어요. 최근에 느낀 건 디아스포라 작가라고 해서 꼭 특정 사회나 문화에 편승해야 하는 건 아니라는 점이에요. 한쪽에 편승하지 않고 양측을 포용하고 담을 수 있는 거죠. 한국에 당분간 조금 더 머물고 싶은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에요. 유연하게 많은 요소를 담을 수 있는 이런 저의 면을 더 들여다보고 그 안의 순환성을 찾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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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비엔날레 참여작들에 대해 더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전시 공간에 들어서면 저의 최근작들인 <시: concrete poem>(2023)과 일종의 프리 스탠딩 영상 조각인 <시: sea (2022)>를 마주하실 수 있어요. 대형 크기의 조각적 드로잉인 <시: concrete poem> 연작은 무당 분들께 직접 전수받은 종이 오리기 기법을 저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작업이에요. 한지를 흑연을 통해 선으로 빼곡히 채우고 제가 쓴 아세믹(asemic)*한 글들을 세심하게 오려내는 과정을 거친, 명상적이고 수행적인 시간의 결과물이기도 해요. 언어의 디아스포릭한 특성에 대한 고민이 담긴 번역 불가의 영역을 시각화 하고 싶었어요. 종이 오리기를 수단으로 선택한 이유는 그림자, 여백, 침묵, 시간을 통한 소통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굿판이 벌어지는 동안 무당들은 종이를 오려 혼들을 소환하고, 의식의 막바지에 태우는 과정을 거친다고 해요. 이처럼 다른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포털로서 종이 오리기를 사용한다는 점이 좋기도 했어요. 언어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고 느꼈거든요.
저의 가장 최근 단편 영상인 <오 더스트>(2023)와 <술래 SULLAE>(2020), 바닥에 영상이 투영된 플로어 비디오(floor video) <And verse (혼잣말의 언어 그리고 cosmos)>도 전시장에서 만나보실 수 있어요. <탈언어화의 악보>와 더불어 할머니가 저에게 남긴 글들과 그에 대한 저의 답변을 소재로 한, 시공간을 초월한 대화가 담긴 조각 아상블라주도 함께 전시되어 있습니다.
*asemic이란 상징 불능의 무언가를 뜻하는 말로, 해독 가능한 단어로 이루어지지 않은 개방된 의미론적 글쓰기를 asemic writing이라고 칭한다.
작업 전반에 걸쳐 소재와 설치 방식과 관련하여 유동적인, 움직이는 요소들이 많이 눈에 띄어요. <오 더스트>(2023)와 <시: sea>(2022)에 등장하는 흐르는 물의 수면, <O (for various skies)>(2021)에서의 흘러가는 구름, <술래 SULLAE>(2020)에서 등장하는 강강술래, <tongues of fire>(2022-23)에서 스크린 속 화면을 비추는 바닥에 설치된 거울들처럼 말이죠. 작가님이 예전 다른 매체에서 언어에 대해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고 열린 결말 형식의 의미 생성의 과정’이라고 표현했던 구절이 생각나기도 해요. 소재와 설치 방식들에 있어 유동성이 가지는 중요성이 큰가요?
그럼요, 설치는 저에게 작품 자체만큼이나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에요. 예를 들어,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가벽만 새로 네 점을 세웠어요. 그중 하나는 한복 원단을 소재로 한 대형의 투명한 벽인데요, 제 영상 작업인 <술래 SULLAE>와 <오 더스트>로 연결되는 일종의 반투명한 통로 역할을 하는 벽이에요. 저에게는 이번 전시에서 언어의 불투명성과 미묘함, 그리고 텍스처들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특히나 중요했어요. 유동적으로 흘러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전시를 기획하고 싶었거든요. 마치 한 편의 시를 걸어서 체험하는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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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탈언어화의 악보>(2021-현재) 연작이 특히 흥미로워요. 영상 중심인 다른 작업에 비해 구분되는 작업 방식과 매체도 그렇고, 설치 방식에 있어서도요. 특히 시각적으로 해독할 수 있는 악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다른 분야의 아티스트들과 협업 하에 퍼포먼스를 진행한 것으로 알아요. 이에 대해 더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최근 몇 년간, 드로잉은 제 작업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어요. 저에게 영상과 드로잉은 활용된 매체는 다르지만, 두 작업 방식 모두 일종의 쓰여진 표현 형태라는 점에서 동일해요. 시각적인 요소를 시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도요. <탈언어화의 악보>는 국제 공용어인 영어를 파편화하고 추상화해서 새로운 추상 형태로 표현한—중첩되고 접히고 고정되는 형식을 사용한—조각적 드로잉 연작이에요. 로마자가 박힌 스텐실을 사용해 영어가 아닌 언어의 새로운 우주론들을 지도화하고자 했어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언어를 출발점으로 삼아, 언어와 그 안에 함축된 의미들의 비선형적 통로를 나타낸 추상 악보인 셈이에요.
말씀대로 해당 연작은 다른 분야의 아티스트들과 협업 아래 연주되고 시연되기도 해요. 아티스트들을 초대해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자유롭게 악보를 연주하고 “번역”하게끔 해요. 퍼포먼스가 어떻게 진행될지 당일까지 저도 예측할 수 없는 거죠. 첫 협업은 저의 친구이자 아티스트인 Li(sa) E.Harris와 함께 진행되었고, 다음은 JJJJJerome Ellis에 의해 시연될 예정이에요. 많이 기대 중입니다.
설치 전경에서 보이는, 악보들 사이 사이에 놓인 흑연 패널들은 쉼표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처럼 느껴져요.
아름다운 해석이에요. 악보들은 그리고 지우는 과정이 반복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저는 지우는 행위를 시각화할 방법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해왔어요. 벽 위에 흑연으로 문지른 흔적들은 프레임 된 악보들과 동등한 역할을 해요. 언급되는 것과 언급되지 않는 것, 그 사이의 간극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거든요. 흑연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끔 촉각화 시킨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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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다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And verse (혼잣말의 언어 그리고 cosmos)>(2022)와 관련하여, 탈언어화의 과정이 작가님께는 언어가 안전하고 사적으로 느껴지게 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고 하셨던 걸 기억해요. 그러한 묘사가 역설적으로 언어의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측면을 동시에 환기하기도 하는 것 같아 인상 깊었어요.
언어는 굉장히 복합적이자 강력한 개념이에요. 너무나 많은 것을 담을 수 있으면서도 풀어낼 수 있는 존재죠. 저 역시 여전히 언어를 하나의 고유한 개체로 존중하고 배우려고 노력 중이에요. (언어만의) 고유한 성질과 기운 등을요. 제국주의의 이면의 식민주의적 권력들로 인해 언어는 너무 오랜 시간 무기화되어 왔어요. 세계 공용어인 영어가 그 대표적인 예시이고요. 저에게 “탈언어화”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어요. 제게 그 과정은 얽혔던 것들을 풀어내고 새로운 길과 가능성을 찾아내는, 궁극적으로 시를 향해 한 걸음 더 다가가는 과정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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