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종 (b. 1981)

“시적인 기하학”

EN/KO


Released on 8 Sep 2023
Featured in ep.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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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은 주어진 재료와 공간 속에서 미니멀하고 장소 특정적인 조각 및 설치 작업을 다루어온 작가이다. 시작과 끝이 명확하게 구획된 영역 안에서 작업한다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제약이나 한계일 수도 있겠으나 오종에게는 이전에는 미처 생각지 못한 새로운 결과물을 도출 할 수 있는 계기와도 같다. 공간과 늘 조화를 이루며 한없이 세밀해보이는 그의 작업이지만, 그는 주로 순간의 감각과 현장과의 상호작용을 기반으로 즉흥적으로 작업에 임한다. 그는 서울과 뉴욕을 오가며 활동 중이며, 서울 아트선재센터(2023); 서울 성북구립 최만린 미술관(2022); 뉴욕과 서울 두산 갤러리(2021); 서울 송은아트 스페이스(2020); 카를수루에 ZKM 미디어 아트 센터(2019); 그리고 서울시립미술관(2018) 등을 통해 작업을 선보인 바가 있다. 그는 제20회 송은미술대상 우수상 수상자이다. 


작년 성북구립 최만린 미술관에서 개최되었던 2인전  《사이의 리듬들》 이후 어떻게 지내셨나요?

9월에 개막을 앞둔 전시들이 많은데, 주로 현장에서 작업을 하기 때문에 현장에 가기까지는 어떤 공간을 만날지 모르기 때문에 상상을 많이 하며 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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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에 소속되거나 정착하지 않은 오랜 시간 활동을 해오셨는데, 최근 작업하시는 있어 코로나의 영향을 많이 체감하셨나요?

영향이 있던 시기가 있었어요. 코로나 이전에는 집과 작업실 없이 떠돌며 지내곤 했는데, 코로나로 인해 한국에 정착하게 되었죠. 계획에 없던 일이긴 했지만, 오랜 시간 떠돌며 지내다 보니 규칙적인 생활 패턴이 없어져 어느 순간 여행에 쉼표를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때마침 하던 시기였어요. 계획에 없던 정착이긴 했지만, 그를 계기 삼아 오래 전 가볍게 했던 작업들을 집중적으로 재개할 수 있었어요. 작은 크기의 수채화 작업과 <Folding Drawing> 시리즈처럼 말이죠.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멈춰야 하는 시기에 되려 (코로나가) 좋은 방향으로 작용 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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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서북부에 위치한 모리아타니아에서 태어나 스페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다양한 문화권을 오가며 자라면서 소속감이 없다는 것에 불안감을 느꼈던 적은 없으신가요?

워낙 어린 시절부터 잦은 이동에 익숙했던 듯해요. 태어나고 자란 곳도 외국이다 보니 소속감 없는 게 오히려 더 자유롭고 편했다랄까요. 예전에는 저의 이러한 배경이 작업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해왔고, 저의 다국적인 어린 시절이 제 작업의 해석을 한정적으로 규정짓는다고 느꼈었어요. 그러나 요즘 들어서는 어쩌면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현재 하는 작업 대부분이 즉흥적으로 이루어지고 전시가 끝나면 폐기되는 방식인데요, 돌이켜보면 어렸을 때 잦은 이사를 하면서 제가 느꼈던 감정과 연결되는 것도 같기도 하더라고요.  친구를 만들고 적응할 법하면 금세 또 떠나야 하는 게 반복되다 보니 뿌리를 내리는 게 두려웠던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 기억들을) 의식을 하고 작업하는 건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공간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Room drawing>부터 신체와 비슷하거나 작아서 사람이 작품에 들어갈 없는, 따라서 일반적인 조각의 개념과 가까운 <Line sculpture>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형의 연작들을 선보여 오셨어요. 공간에서 작업을 설치 어떤 점을 가장 염두에 두시나요?

어떻게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웃음), 때마다 공간에게 물어보고 대화를 한다고나 할까요. 특정 장소를 향해 편한 마음으로 믿음을 가지고 편안하게 머물다 보면 대답이 들리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사전 준비는 거의 없이 공간과의 균형을 맞춘다고 생각하고 작업에 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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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인 작업들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해요. 오브제들을 적극 활용하신다는 점은 익히 알고 있지만 <Room drawing (Found objects #1)>(2018)에서는 유독 많은 오브제들이 활용된 것으로 보이는데, 기원이 궁금합니다.

해당 작업은 일본에서 했던 전시였는데요,  전시 기간이 열흘 정도로 매우 짧았어요. 설치 기간은 심지어  하루 뿐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빠듯한 시간 안에 작업을 어떻게 완성해야 하나 고민하다 생각해 낸 방법이 전시 기간 자체를 작업 기간으로 삼는 것이었어요. 즉 전시가 시작된 날부터 매일 그 날 아침마다 길에서 주워 온 물건들로 작업을 완성해 나가기 시작한 거죠. 마치 하나의 이야기를 써 나가듯이 말이에요. 작품은 열흘 동안 매일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갔고 작업 과정 자체도 관객들이 함께 관람했습니다. 매일 모은 물건들이 쌓이다 보면 그 안에서 이야기가 생긴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던 경험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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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und gesture> 시리즈 전반적으로 오브제가 많이 등장하는 느낌이에요. 의자가 모티프로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다른 작업들에 비해 색채가 많이 가미된 점도 눈에 띄어요. 색채와 재료 선택에 있어 다양한 가능성들을 끊임없이 모색하는 편인가요? 아니면 비슷한 유형의 재료들로 새로운 결과물을 도출하는 것에 더욱 관심이 있으신가요?

<Found gesture> 중 의자 시리즈는 일본에서 했던 작업으로,  길에서 만난 오브제들을 활용한 시리즈의 초기 작업이에요. 당시 자주 오가던 길에 의자들이 한 무더기 버려져 있어서 틈날 때마다 모아두었다 활용하곤 했어요. 초록색이 등장하는 <Pyramid>(2009)도 대학원 시기의 작업으로  초록색 페인트를 친구가 줘서 선택한 색이었고, (시리즈의) 다른 작업에서 등장하는 돌과 나무, 화장 붓도 모두 길에서 줍거나 이런 저의 작업 방식을 알고 지인들이 나에게 준 물건들이에요.

저에게 상황마다 주어진 것들을 활용하여 일종의 틀을 만든 후, 그 안에서 제약을 두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나가는 걸 즐기는 편입니다. 자유가 제한되어 있다는 점에서 삶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고 생각해요. 공간 작업도 결국 제약이자 변화할 수 없는 틀인데, 그걸 하나씩 직접 해결해나가는 것이 결국 저의 작업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의자를 활용한 작업은 오브제를 의자로만 제약을 두고 작업했을 때 무엇이 나올 지 궁금해서 했던 작업인 셈이죠.

제약이라는 건 결국 조각이라는 장르의 특성과도 이어진다고 생각해요. 조각은 착시 없이 늘 물리적으로 현존하는, 정직한 매체라고 느껴요. 나무든 돌이든 늘 무게와 중력이라는 불가분의 조건이자 제약 안에서 무언가를 해야한다는 점이 매력이라고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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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e sculpture>이나 <Compo-site> 포함하여 공통적으로 그리드와 같은 기하학적인 패턴들이 등장해요.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리드의 변형이나 공간에서의 (작업) 위치를 보면 작가의 손짓이 많이 느껴진다랄까요. 기하학적 형태들과 오브제들의 결합임에도 불구하고 기계적인 공정이나 즉물적인 느낌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시적인 느낌이 드는 같아요.

맞아요, 손을 많이 쓰려고 노력해요. 기하학적인 형태로 인해 자칫하면 차갑게 보여질 수 있는 작업이지만, 따뜻한 기하학적 작업을 하고 싶다는 것이 저의 오랜 바람이에요. 검은 실을 써도 되는데 일부러 흰 실을 써서 표면에 페인트나 목탄 가루를 손으로 칠하는 방법을 쓰기도 하죠. 미세하지만 따뜻한 느낌을 더하고 싶거든요. 미국 미니멀리즘의 진지하고 기계적인 공정을 환기하는 느낌은 지양하려는 편입니다. 예술이라는 분야가 결코 쉽진 않지만 적당히 가볍고 즐기는 마음으로 임하고 싶어요.


다른 시리즈들이 주로 화이트 큐브 안에서 공간을 새로이 재해석하는 느낌이라면 뉴욕에서 대학원 재학하셨을 작업하신<
Treeangle>(2012)에서는 설치 공간이 외부로 나오게 되죠.  나무를 소재로 선택하신 이유도 궁금하고, 내부 공간에서 작업 때와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도 궁금합니다.

뉴욕 맨하탄에서 15분 정도 배를 타면 Governors Island라는 곳이 있어요. 지금은 개발이 되어 많이 바뀐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제가 뉴욕에 있을 당시만 해도 폐가만 있는 외딴 섬이었어요. 그곳에서 진행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했을 때 작업한 공공작업이에요. 이 때 처음으로 화이트 큐브라는 내부 공간이 아닌 틀 너머의 자연, 즉 자연의 나무라는 이미 만들어진 구조 안에서는 어떤 작업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 나온  작업입니다. 나무의 특성상 탄력이 있으니 실을 팽팽하게 잡아주는 특성을 이용해서 작업을 했어요. 외부에서 진행하는 공공 작업은 아무래도 파손이나 관객 안전 등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아 제약도 더 많기 마련이더라고요. 그러나 주어진 것들을 틀 안에서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그 가능성을 모색하고 해결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작업 방식은 결국 유사하다고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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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서울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는 단체전 《off-site》에서 선보이실 작업들에 대해 소개 부탁 드려요.

《off-site》는 미술관의 메인 전시관이 아닌 무대 뒤, 기계실, 계단 혹은 옥상과 같은 일종의 남은 공간들을 활용하는 전시입니다. 저는 지하에서부터 지상으로 연결되는 계단들을 배경으로 작업하게 되었는데요, 구조물도 많고 통 유리로 인해 외부 공간이 바로 보여 특색이 강한 곳이에요. 보일 듯 말 듯한 미세한 작업보다는 《사이의 리듬들》에서 선보였던 것처럼,  조명 작업을 하면 공간과 유기적인 소통이 가능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시선과 동선에 따라 미술관의 외부 풍경과도 맞닿고 흩어지는 작업입니다.


《off-site》는 10월 8일까지 서울 아트선재센터에서 개최된다. 더 많은 정보는 다음 사이트를 통해 확인 가능하다: https://artsonje.org/en/exhibition/off-s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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