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세 진 (b. 1971)

“삶의 풍경”

EN/KO


Released on 21 April 2024
Featured in ep. 3

김세진의 영상 작업에서는 개인과 거시적인 사회 체제 간의 관계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등장한다. 그는 사회 시스템을 마주하는 개인, 이동과 이주, 혹은 디지털 기술과의 상호작용 등의 주제들을 탐구하며 현대 사회와 그 사회를 살아가는 개인 간의 다층적인 관계를 파헤친다. 뚜렷한 플롯이나 내러티브의 부재가 특징적인 그의 영상은 현실과 가상의 혼재를 강조하는 연출 기법, 그리고 설치 방식의 변주 등을 통해 작품의 주제를 상징적이고 공감각적으로 표현해낸다. 래이더는 그를 만나 주류 사회에서 쉽게 소외되는 개인들의 삶의 풍경을 담아온 그의 작업 세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김세진은 2016년 제 16회 송은미술대상을 수상했으며, 서울 송은 아트스페이스(2019); 서울 문화역서울284(2014); 이스탄불 프리즈마 갤러리(2015); 서울 아트센터 나비(2011); 서울 금호미술관(2006) 등 유수의 기관에서 개인전을 선보인 바가 있다.



대학원 때부터 영국에서 오랜 시간 지내신 걸로 알고 있어요. 이동을 하신 시기에 작품의 소재나 사회에 대한 시선에도 변화가 있으셨는지 궁금해요. 작가님 작업에서 발견되는 이민자, 혹은 이방인들에 대한 관심이 직접 경험하신 타지 살이에서 비롯된 건지도 궁금하고요.

외국에서 산다는 것은 삶의 환경이 바뀌는 것이에요. 당연히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게 되죠. 그 시간을 통해서 사회적 정체성이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매우 유동적이라는 걸 경험했어요. 예를 들면, 한국에서는 중산층의 평범한 여성이었지만, 타지에서는 언제든 잠재적 불법체류자가 될 수 있는 이민국의 경계 대상이 된다던지 하는 상황말이죠.


동양화를 전공하셨음에도 앞서 말씀하신 소재들을 꾸준히 영상 매체를 통해 풀어내고 계시다는 점이 흥미로워요. 영상 매체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특별히 있으셨던 걸까요? 매체를 자유롭게 다루기까지의 과정도 궁금하고요.

동양화는 어린 시절부터 오랜 시간 공들여 체득한 매체였어요. 하지만 대학에 들어와 대면한 현실은 민주화에 대한 시대적 갈망으로 가득했고, 예술은 그런 시대상을 반영하는 분위기가 강했지요. 그런 와중에 고전 회화의 방법론을 벗어나고자 새로운 매체를 찾기 시작했고, 그것이 전공과는 무관한 사진을 시작하는 계기가 됐어요. 그러면서 영상, 3D모션그래픽 등 스스로 습득하게 된 시기를 거쳐 이후 영화 연출을 전공하고 다양한 영상 프러덕션을 경험했고, 거기서 배운 것들을 작업과정에 활용하게 되었죠.



그렇군요. 작가님께서 영상을 통해 풀어내고자 하는 관심사에 대해서 우선 말씀을 나눠보고 싶어요. 그 소재 중에 하나는 시스템이나 규율, 혹은 도시라는 집단에 속한 개인이라는 주제가 자주 발견되는데, 혹시 조금 더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현대는 도시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환경이죠. 인공적 체계와 규율 등 많은 부분을 따라야 하는 규칙 속에서 살아가게 되는데 제가 주목하는 것은 그런 시스템이 주는 제한과 한계에 저항하거나 순응하려는 개인의 태도와 그것을 둘러싼 현상들입니다. 그런 현상의 이면에 자리한 사회적, 역사적 배경 등 다양한 영향들을 유추하면서 이야기를 펼치는 거죠.

특히 ‘개인의 저항하거나 순응하는 태도’에 관한 기준은 언제나 유동적이고 세상의 변화와 유기적이라는 것을 뜻해요. 사회가 변화하고 기술이 발달하면서 세대 또한 교체되는 그런 변화의 관점에서 보면 양가적 태도는 언제나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이동과 이주또한 작가님의 작업에 있어 중요한 키워드예요최근에는 기술의 발전으로 물리적인 이동 없이도 타인과의 소통이 가능해졌고, 특히나 코로나 이후로는 재택 근무나 화상 회의, 또는 VR 활용이 뉴 노멀(New Normal)로 자리 잡았어요. 이런 변화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시나요?  

‘뉴 노멀’이라는 단어는 미디어적 환상일지도 모르겠어요. 언제나 그렇듯이 그런 변화가 일상 생활 안으로 편안하게 스며들기까지는 공허한 환호성들이 가라앉은 후, 비로소 몸과 머리로 체득하는 과정을 거쳐야 가능해지고는 하죠. 다만 입체적이었던 세상이 점점 컴퓨터 화면이나 모바일의 액정 속으로 들어가 점점 납작하고 평평해지는 만큼 신체적 이동은 자유로워졌지만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은 중앙집권적 통제와 규율에 익숙해져 그만큼 얕아진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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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화면을 통해 전에는 없었던 미지의 세계들을 쉽게 경험할 있다고 생각해왔었는데, 그렇게도 생각할 있겠네요. 흥미로워요. 한편, 앞서 언급 드린 소재들 이외에도 남극을 둘러싼 국가들 간의 갈등(<2048>(2019))부터 미술관에서 근무하는 청소 미화원(<도시 은둔자들>(2016)) 이르기까지 예측 불가한 소재들을 활용한 작업들에 대해서도 궁금해요. 작업의 소재를 선정하는 기준과 이를 연구하는 방식이 궁금합니다. 낯선 분야의 소재의 경우, 직접 그 분야의 전문가들을 만나 자문을 구하기도 하시는지요?

의도를 가지고 소재를 선정하기보다는 오랜 시간 제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부분들’에 집중을 하는 편이에요. 작가적 직관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는데, 그런 순간에 사로잡히면 이어서 많은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는 편이에요. 그러다가 실제로 전문적인 소견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 때면, 전문가의 자문을 구하기도 하죠. 이런 작업 과정이 정형화되지 않도록 매번 다르게 접근하려고 노력합니다.


영화감독으로서 호흡이 영화를 만드신 적도 있고, 전에는 광고 회사에서 일하신 경험도 있으신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작가님의 영상 작업들에는 흔히 영화나 광고로부터 기대하는 뚜렷한 플롯이나 내러티브는 부재한 것 같아요.

영화가 현실을 재현하기 시작하면서 드라마적 장르가 강해지기 시작했어요. 제가 영화에 빠졌던 시기에는 드라마 이외에 다양한 요소들, 예를 들면 카메라 워킹, 빛과 그림자, 음악과 사운드들이 적절한 서사를 빚어내는 그런 종류의 영화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어요. 저는 영화를 이해하는 방식을 시각적인 언어로 경험했고 현재까지의 작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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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이해하는 방식이라고 말씀하셔서 말인데, 작가님 작업은 매체 속 주제 만큼 설치 방식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존재하지 않는 것을 향한 북쪽>(2019)에서 화면이 일반 영상 비율을 넘어서 가로로 확장된다거나 <모자이크 트랜지션>(2019)에서는 두 개의 세로 화면을 합쳐 선보였어요. 이 밖에도 다채널의 영상 방식이나 전시장에서의 유색 조명도 자주 눈에 띄어요. 영상의 공감각적 설치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를 통해 관객이 유의했으면 하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설치 방식이 작업의 내용들과도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궁금해요.

<존재하지 않는 것을 향한 북쪽>은 극지방 원주민의 전통적 정체성과 현대적 시스템사이의 갈등을 이야기한 작품입니다. 어디로든 이동이 가능한 시대에 살지만 여전히 인지하지 못하는 삶의 풍경에 대한 은유이기도 해요. 실제로 주인공의 거처를 찾기 위해 이동하던 북유럽의 겨울 풍경을 일반 화면비보다 길게 만들어 표현했습니다. 공간 전체를 빨강색으로 구성한 것은 ‘해’ 가 귀한 극지방에서 이를 삶의 중심으로 여기는 것을 보고 태양의 상징적 색상으로 사용했고요. <전령들>의 파란 색도 같은 이유로 인류의 새로운 영토확장과 식민의 대상인 ‘우주’ 를 상징하는 색상으로 선택했습니다.

<모자이크 트랜지션>은 마치 한 화면을 둘로 나눈 2채널 영상이지만 각각의 화면은 세로로 긴 핸드폰의 화면비를 따르고 있죠. 디지털 환경에서 따로 또 같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에 관한 설치로 표현했고요. 그 사이를 통과하는 4개의 스피커 역시 화면과의 싱크를 의도적으로 거스르게 배치함으로써 모자이크화된 세계의 혼란, 균열 안에서 스스로 혹은 함께 정보를 찾아 나가는 우리의 모습으로 묘사하고자 했습니다.



한편, 제가 개인적으로도 흥미롭게 <도시 은둔자>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청소 미화원의 실존에 주목한, 시스템 안에 소외된 익명으로서의 개인을 담아낸 작품이에요. 영상의 후반부까지는 실제 미화원을 보여주다 마지막 장면에는 배우가 등장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영상의 다큐멘터리적 성격이 연극적으로 전환되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배우를 출연시킨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영상 프로덕션은 몇 가지 특별한 종류의 제한을 받게 되는데 <도시 은둔자>의 경우는 공공 장소가 주는 제한된 촬영 시간이 큰 걸림돌이었지요. 미술관에서 허가한 일정 안에서 원하는 장면들을 얻기 위한 최선책들을 나열하고 상황을 편집하는 방식으로 제작되었어요. 실제로 미술관에서 일을 하는 분들은 평소 해오던 일—주로 미동없이 제자리를 지키는—을 수행하고 그 장면을 카메라에 담는 것이어서 특별히 연기가 요구되지 않았죠. 다만 영상의 중심에서 적극적 ‘이동’을 안내하는 ‘청소 노동자’의 역할은 인물의 재연이 아닌 그 존재를 상징적으로 묘사해야 했으니 그 표현이 가능한  전문 배우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있었습니다.


작가님은 작업 시 주로 직접 촬영한 푸티지를 활용하거나 디지털 이미지와 영상을 부수적인 요소로 사용해오셨어요. 그에 반해,  <모자이크 트랜지션>은 오픈소스로 제공되는 이미지와 영상으로만 이루어졌는데요. 때문인지 최근 들어 한창 논란인 AI 생성 이미지나 딥페이크 기술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관련 기술들이 점점 대중화됨에 따라 무분별한 사용을 우려하는 윤리적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가 역사를 통해 이해한 것이 하나 있다면 특정한 시기마다 큰 변화가 이루어졌다는 것인데요. 2000년대 초반의 인터넷 시대의 시작을 목도한 것은 개인적으로 매우 큰 사건이었어요. 이해할 수 없는 세계가 열리는 듯했지요. 최근에 같은 시기가 도래했음을 직감하는데요. 아마도 팬데믹 시기에 우리가 겪었던 불안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기술을 통한 확실성에 의존해 보려는 시도들의 총체적 결과가 아닐까 싶어요. 새로운 기술의 사용은 언제나 위험했고 윤리에 위반되는 경우가 많았지요. 하지만 이 혼돈이 잠잠해지면 당연히 삶의 일부분으로 사용되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2018년에 남극 세종과학기지를 다녀오신 경험을 바탕으로 제작된 <2048> 보고 정말이지 소재의 무한한 확장에 대해 감탄했던 기억이 나요. 보통 남극은 일반인은 쉽게 없는 미지의 세계로 그려지곤 하잖아요. 작가님이 실제로 경험하신 남극은 어떠셨는지 궁금해요. 경험들이 작업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도 알고 싶고요.

저는 많은 곳을 여행했고 당연히 ‘남극’은 그 중에서도 단연 독특한 여행지이지요. 그것은 아마도 일반적으로 접근할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요. 제가 ‘남극’에 가고자 했던 이유는 그 영토가 지닌 지정학적 요소 때문이었어요. 풍경으로서 ‘남극’은 오히려 우리가 인터넷에서 검색하던 이미지들이 더 환상적이었고, 실제로 경험한 것은 그저 그런 화산섬의 황량한 풍경에 더 가까웠죠. 풍경에 매료되기에는 바람이나 기온 등의 제한이 많았고, 때문에 이동의 제한이 있었으니 기지안에서의 실내활동이나 과학자, 엔지니어들과의 대화가 무척 흥미로웠고 작업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2048>의 경우, 남극에 대한 실제 사실을 바탕으로 설정된 가상의 영토 “G”에 대한 이야기로, 제가 남극에서 직접 촬영한 영상을 활용했어요. 영상 말미에 조용히 언급되는 실제로 존재했던 예비 과학자의 비화가 제가 말하고자 하는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상징하는 일종의 숨겨진 나레이션인데요.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일화지만 그 비운의 예비 과학자가 꿈꾸었던 ‘이상’의 시작이자 아쉽게도 끝을 맺은 장소인 ‘남극’에 대한 의미를 인류의 이상향에 대한 끝없는 열망과 동조하여 묘사하려 했습니다. 허구의 시나리오에 실제 로케이션 촬영을 뒤섞은 편집을 시도했고요


영상이라는 매체 하나로 이렇게 다층적인 주제들을, 다양한 연출 기법으로 풀어낼 있다는 신기해요. 구체적인 소재는 끊임없이 변화함에도 불구하고 작가로서 지키려는 철칙 같은 있으신가요?

모든 대상과 현상에 일정한 거리를 두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평소에 뉴스와 픽션을 열심히 챙겨 읽으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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