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시작 전 무대가 세팅되는 준비의 시간, 기나긴 공항 수속 줄에서 대기하는 기다림의 시간, 혹은 무언가를 완성하기 위한 노동의 시간. 모두가 한 번 쯤은 살아오면서 직접적으로, 때로는 간접적으로 접해봤기에 익숙하게 떠올려 볼 수 있는 순간들이다. 무대 세팅은 콘서트를, 공항 수속은 출국을, 노동은 결과물이라는 최종적인 완성물로 나아가기 위한 단계적이고도 일시적인, 그러나 없어서는 안될 과정이다. 어찌 보면 환호와 주목을 받는 명(明)의 순간들을 위해 묵묵히 있어주는 잔잔한 암(暗)과 같은 순간들인 셈이다. 박진아는 상황을 관조하는 관찰자의 입장이 되어 눈 앞에서 순식간에 흘러가는 이 순간들에 영원성을 부여하고, 그렇게 고정된 시간을 보는 이에게 공유한다. 래이더는 2000년대 초반의 로모그래피 시리즈를 시작으로, 일상의 묵묵한 기둥이 되어주는 순간들을 향한 박진아의 시선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박진아는 부산시립미술관(2023); 청주시립미술관(2021); 부산 국제갤러리(2021); 서울 합정지구(2018); 뒤셀도르프 Plan.d(2015); 그리고 뉴욕 두산갤러리(2013) 등 국내외 유수의 기관에서 작업을 선보인 바가 있으며, 그의 작업은 서울시립미술관, 대구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금호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그는 한국과 독일을 오가며 활동 중이다.
현재 어디에 머물고 계신가요?
지금은 독일 뉘르베르크에 있어요. 서울과 이곳을 일년에 한 두 번 정도 오가며, 2-3달 정도는 이곳에서 보내고 있어요. 마음 같아서는 조금 더 머무는 시간을 늘리고 싶은데 일이 대부분 서울에 있다 보니 마음 만큼 안되네요.
서울과 뉘른베르크는 꽤나 서로 상이한 환경인데, 작업하실 때 그 차이가 직접적으로 와 닿나요?
사실 조용하고 작업하기에는 전체적으로 느린 뉘른베르크가 더 좋긴 해요. 왜냐하면 이곳에서는 일이 훨씬 덜하니 저를 찾는 사람도 없고, 갈 곳도 딱히 없으니까요. 작업실 자체도 공간적 여유가 더 많고요. 반면 작업에 필요한 재료를 산다든지, 이런 소소한 점들이 조금 불편하긴 해요. 이곳에서는 차가 없기도 하고 제가 독일어를 유창하게 하는 건 아니니까요. 생활 면에 있어서 서울처럼 모든 게 일사천리로 빠르게 진행되는 게 아닌, 하나를 처리해도 멀리 가야한다거나 오래 시간을 들여야 하죠. 그래도 바쁜 서울에 있다 조용한 이곳에 오면 브레이크 기간을 중간에 갖는다는 듯한 느낌이 있어요.
직접 촬영한 스냅들을 작업의 기초로 자주 활용하시는 걸로 알고 있어요. 작가님 작업을 보면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관찰하는 것에서 (화면 속) 이야기가 시작된다고 느껴지는데, 말씀하신 것처럼 두 도시의 다른 분위기가 관찰 대상에도 영향을 미치나요?
아무래도 그런 감이 있어요. 그 직접적인 영향을 제가 뚜렷하게 인지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환경이 달라지니 제가 대상을 관찰할 때 조금 더 낯설게 보게 되는 그런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외국에서 머물다 한국에 돌아오면 한국이 다르게 보이는 것처럼요. 별 것 아닌 것도 더 잘 보이게 된다랄까요.
작가님 홈페이지에 아카이빙이 워낙 꼼꼼하게 잘 되어 있어서 제가 실제로 볼 기회가 적었던 2000년대 초중반 작업들을 유심히 봤어요. 그런데 <Passport Photo> 시리즈 (2000)나 <Head> 시리즈 (2000), 혹은 <Postcard> 시리즈 (2002) 와 같은 2000년대 초반의 작업들에서는 최근 작업들에서 자주 나타나는 시간성의 개념이 크게 부각되지 않더라고요.
그 당시 작업들은 대학원 졸업 직후에 막 그렸던 그런 작업들이에요. 작업 보시면서 느끼셨을 수도 있는데,
당시에 벨기에 출신 작가인 뤽 튀만(Luc Tuymans)의 전시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어요. 소재를 접근하는 방식에 있어서 사진의 매체적 특성이 그대로 드러나면서도 회화적인 방법으로 표현해내는 걸 보고, 회화의 많은 가능성을 봤던 것 같아요. 그 시기를 기점으로 제 주변을 담은 가벼운 스냅 사진이나 엽서, 혹은 여권 사진과 같이 부분적인 파운드 이미지들을 활용해 짧은 이야기를 담은 작업들을 하기 시작했어요.
말씀하신 시기의 작업들을 보면 본격적으로 네 컷의 분할식 구성이 등장을 하는 게 보여요. 그 구성이 제가 재미있다고 느끼는 지점인데, 그 때부터 시간성에 대한 개념 역시 화면에서 가시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고 느꼈어요.
그 시리즈를 저는 개인적으로 로모그래피(Lomography) 시리즈라고 불러요. 요즘은 그리 흔하지 않은데, 그 당시에는 토이 카메라 같은 형태의 4-5만원짜리 필름 카메라가 많이 있었어요. 정말 간단한 촬영 기능만 있는, 대충 감으로만 피사체를 찍는 카메라요. 그걸 사다 스냅 사진들을 찍기 시작했는데, 그 형식이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스냅 사진의 성격 자체가 우연히 촬영된 가벼운 느낌이 있잖아요. 애초에 정확하게 프레임을 잡아 정밀하게 찍는 것과는 거리가 있는 사진이다 보니 오히려 로우 테크의 특성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보고 싶었어요. 그게 또 당시 회화에 대한 저의 접근 방식이나 감수성과도 잘 맞았다고 느끼고요.
그 카메라는 렌즈가 네 개가 달려있어서 1초 동안 네 컷을 찍어요. 다시 말해 한 장에 네 컷이 나오는 거죠.
거기서부터 연속 장면들이 등장하는 특성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당시에 제가 그걸 의도했다기 보다 말씀하신대로 순간성과 형식의 신선함에 흥미를 가지고 이것저것 실험을 해보았다고 하는 편이 더 맞는 것 같아요. 그 특정 카메라가 시간을 담는 방식에 대한 흥미라고나 할까요. 돌이켜보니 현재 제 작업의 기반을 이루는 많은 것들이 그 로모그래피 시리즈 때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진이라는 게 때로는 기록을 목적으로, 즉 아카이브용으로 최대한 객관적인 소재를 담기 위한 수단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지극히 사적인 기억의 순간들을 포착하기 위한 수단이 될 수도 있잖아요. 선생님께서 이미지를 카메라에 담으실 때는 주로 어떤 목적을 두고 하시나요?
방금 주신 질문을 되새겨봤을 때,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도통 모르겠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두 개가 다 맞는 것 같아요. 두 목적이 다 있는데 예전에는 상대적으로 사적인 순간을 담은 주관적 매체로 더 다가갔던 것 같아요.
어떤 면에서 그렇게 느끼시나요?
과거에는 그리는 대상도 제 주변에서 자주 찾아 그렸고 저의 지인들도 자주 등장을 했거든요. 그런데 2010년 즈음을 기점으로 <A Man Ironing in a Round Gallery>(2010) 나 <Lighting Above>(2009-2010), <Two Stories>(2012)와 같이 본격적으로 전시장을 그린 작업들을 시작하며 사적인 기억과 기록의 목적이 합쳐지기 시작했어요. 예를 들어, 제가 참여하는 전시의 전시공간에서 관찰한 장면들을 찍기 시작한 건데, 그게 계속되면서 자연스럽게 현장에서 일하는 모습을 기록하는 성격까지 띠게 된 거죠. 그 뒤로부터는 점점 기록적인 성격이 더 강해지고 낯선 사람들을 많이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렇다고 요즘의 작업들이 아예 사적인 의미들이 담겨 있지 않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여전히 가끔 지인들이 등장을 하기도 하고, 대부분 제가 직접 촬영한 사진들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어쨌든 제가 경험을 한 순간들이잖아요. 다만 제가 적극적인 개입을 하지 않는 관찰자의 입장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기록적인 성격이 더 짙어 보이는 것 같아요.
촬영하신 사진들로 이미지들이 모이면, 어떤 기준으로 이미지들을 선정해서 화면에 옮기시나요?
대부분 인물의 동작을 기준으로 봐요. 말로 표현하기는 조금 어려운데, 보다 보면 마음에 드는 특정 동작들이 있어요. 대게 특별할 것 없는 일반적인 동작들이죠. 일하는 중간에 무언가를 들어올린다거나 어딘가를 쳐다본다거나, 뭐랄까, 순간성이 드러나면서 약간의 텐션이 있는 동작들이요. 그런 동작들을 중심으로 골라서 여러 이미지들을 합쳐요. 우연찮게 모든 게 맞아 떨어져 사진 속 이미지들이 화면으로 그대로 옮겨지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보통은 원하는 구도가 정확하게 찍힌 경우는 잘 없죠. 그래서 제가 원하는 동작들을 이 사진, 저 사진에서 가져와서 한 화면 위에 배치시키며 구성한다고 할 수 있어요. 작업마다 조금씩 차도가 있지만, 구도는 대체적으로 제가 만드는 편이에요. 보통 같은 장소에서 찍은 서너 점의 사진에서 출발해요.
방금 말씀하신 것을 듣다 보니 이미지의 연속성이 떠올라요. 카메라로 연속 촬영을 했을 때 찍힌 이미지들을 볼 때 느껴지는 거요. 최근에 부산 시립미술관에서 선보이신 <전시를 만들며 >(2023)를 보면서 이미지들이 캔버스를 넘어 공간을 매개로 다음 동작으로 이어지는 설치가 굉장히 재밌다고 느꼈어요. 작년에 Wess에서 열린 ⟪Sometimes it sticks to my body⟫의 시퀄 같은 전시 같기도 했고요. 캔버스를 공간 전체로 확장 시킨다는 점에서 말이에요.
부산 시립미술관에서 전시한 커미션은 (인터뷰 당시 기준) 제가 가장 최근에 한, 정말 새로운 작업이었어요. 저로서는 벽화 자체를 처음 시도하는 것이기도 했어요. 물론 말씀하신 Wess 에서의 전시처럼 과거 개인전을 할 때 늘 조금씩 설치 작업과 유사하게 공간과 연결해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그림 자체를 공간으로 생각하고 그리는 경우도 있었어요. 다만 Wess 때는 처음부터 기획을 맡으신 장혜정 큐레이터 님께서 벽을 강한 색으로 칠한다는 아이디어를 갖고 계셨어요. <전시를 만들며>의 경우, 부산 시립미술관이 곧 시작될 대대적인 보수 작업 전 마지막으로 열리는 전시다 보니, 공간으로서의 미술관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의의가 담긴 전시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획자 분이 꼭 저에게 할당된 전시공간을 자유롭게 써달라고 강조하셨어요.
이렇게 넓은 공간을 제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은 만큼, 이 참에 새로운 걸 시도해보자는 결심을 했죠. 오픈 두 달 전 쯤 미리 공간에 가서, 다른 전시들이 준비되는 순간을 담은 사진들을 열심히 찍었어요. 그 사진들을 시작으로 유화 작품을 두 점 그린 뒤 캔버스 속 이미지가 벽화로 연장되게끔 설치한 작업이에요.
작업하시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으셨나요?
벽화의 특성 상 설치 기간이 그리 길지 않잖아요. 보통 그림은 짧게 기간을 잡고 그리지 않는데, 해당 작업 같은 경우 일주일 안에 끝내야 해서 구상 자체도 새롭게 해야 했고, 어시스턴트도 난생 처음 구했어요. 또, 짧은 시간 안에 완성하기 위해서 유화 작품에 방해되지 않는 정도의 단순함을 원했어요. 제한적인 색을 사용하되, 필요한 재현적인 요소는 모두 포함된 드로잉을 그린 뒤 벽에다 옮기는 방식으로 작업했어요.
조금 주제를 바꿔 보자면, 이전 작업부터 꾸준히 이미지의 연속성 외에도 자주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었어요. 바로 조명과 관련된 부분인데요, <긴 저녁>(2007), <리허설 02>(2017), <공원의 새 밤>(2019) 시리즈 등에서와 같이 어두운 밑바탕에 혼재된 인공 조명이 시선을 사로잡는 이미지들을 자주 발견할 수 있어요. 사실 현실에서는 조명이 주목의 대상이 되기 보다는 보통 다른 초점의 대상을 뒤에서 밝혀주는 역할을 주로 하잖아요. 그런데 작가님 작업에서는 반대로 조명이 시선을 사로잡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아시다시피 제 작업들에서는 실내 미술관이나 갤러리 모습을 다룬 작업들이 많아요. 화이트 큐브들에서는 보통 자연광이 잘 없잖아요? 그러다 보니 소재가 소재인 만큼, 우연히 인공 조명을 많이 그리게 되면서 점점 부각된 것 같아요. 인공 조명을 그리다 보니, (자연광에 비해) 빛에 대한 인식을 더 많이 하게 되고 제가 직접 작가로서 개입을 해서 여러 빛의 효과를 낼 수 있는, 빛 자체를 그리는 즐거움이 있더라고요.
광원에 대한 이런 흥미와 함께, 아무래도 밤이라는 시간대가 인공 조명이 야외에서 두드러지는 시간대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낮보다 더 빈번히 등장하게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해요. 밤이 주는 정취랄까, 그런 걸 그려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회화에 프레임이 주로 있다는 게 회화의 본질임과 동시에 한계라고도 느끼시나요? 질문을 드리는 이유는 작가님께서 독일 작곡가 페터 간 (Peter Gahn)과 협업하신 <Neon Gray Terminal> (Hite Collection, 2014)을 보며 회화라는 매체의 가능성을 또 한번 확장하려는 시도의 일환처럼 느껴졌었거든요.
사실 회화다 보니 협업을 할 일이 거의 없어요. 그 때 그 전시가 거의 유일하다고 할 수 있는데, 제 작업을 보는 동시에 현장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피터가 작곡한 일렉트로닉 전자 음악을 듣는 형식의 전시였어요. 피터가 제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캔버스 뒤에 컨택 마이크를 설치해서 그림이 그려지는 소리를 녹음한 걸 기반으로 한 사운드였어요. 그림이 시각적으로 결과물을 보여준다면, 사운드를 통해 붓질의 리듬, 감각 등을 사운드로 전환한 거죠.
그 때 그 작업이 협업의 첫 시작이었던 셈인데, 저로서는 제 작품을 처음 사운드로 접근해보는 경험을 한 거였어요. 사운드와 함께 작업을 보니, 가만히 시각적으로 보고 있을 뿐인데도 공간이 확장되는 듯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물론, 아예 날 것의 로우(raw)한 음향이 아니라 작곡가의 여러 노력이 가미된, 많은 과정을 거친 결과물이었죠. 그 협업을 계기로 공감각적으로 회화를 보게 되는 경험을 했고, 그게 그 이후의 작업들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어요.
회화의 매체적 한계와 특성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한계는 당연히 있어요. 그런데 저는 그 두 가지가 같은 개념인 것 같아요. 네모난 프레임이 존재하다 보니 움직임을 담는 데 제한이 있기도 하지만 사실 그 점 자체가 회화의 특성이자 본질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한계라고 말하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앞서 말씀드린 협업들이 그 제한된 감각, 혹은 회화에 대한 공감각적 인지를 확장해주는 것 같아 개인적으로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느껴요.
벌써 인터뷰를 끝마칠 시간이 되었네요. 향후 계획이 어떻게 되시나요?
이제 부산 전시 끝나고 정신없이 독일로 건너온 상황이라, 천천히 여유를 두고 개인전을 준비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제대로 공개할 기회가 없었던 원작들과 함께, 새로운 작업도 해볼까 고려 중이고요. 작년에는 식당의 주방을 소재로 작업을 자주 했었거든요. 아직 정해진 건 전혀 없고, 기존에 해왔던 것들을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풀어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에 열려있는 상태에요.
박진아는 부산시립미술관(2023); 청주시립미술관(2021); 부산 국제갤러리(2021); 서울 합정지구(2018); 뒤셀도르프 Plan.d(2015); 그리고 뉴욕 두산갤러리(2013) 등 국내외 유수의 기관에서 작업을 선보인 바가 있으며, 그의 작업은 서울시립미술관, 대구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금호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그는 한국과 독일을 오가며 활동 중이다.
현재 어디에 머물고 계신가요?
지금은 독일 뉘르베르크에 있어요. 서울과 이곳을 일년에 한 두 번 정도 오가며, 2-3달 정도는 이곳에서 보내고 있어요. 마음 같아서는 조금 더 머무는 시간을 늘리고 싶은데 일이 대부분 서울에 있다 보니 마음 만큼 안되네요.
서울과 뉘른베르크는 꽤나 서로 상이한 환경인데, 작업하실 때 그 차이가 직접적으로 와 닿나요?
사실 조용하고 작업하기에는 전체적으로 느린 뉘른베르크가 더 좋긴 해요. 왜냐하면 이곳에서는 일이 훨씬 덜하니 저를 찾는 사람도 없고, 갈 곳도 딱히 없으니까요. 작업실 자체도 공간적 여유가 더 많고요. 반면 작업에 필요한 재료를 산다든지, 이런 소소한 점들이 조금 불편하긴 해요. 이곳에서는 차가 없기도 하고 제가 독일어를 유창하게 하는 건 아니니까요. 생활 면에 있어서 서울처럼 모든 게 일사천리로 빠르게 진행되는 게 아닌, 하나를 처리해도 멀리 가야한다거나 오래 시간을 들여야 하죠. 그래도 바쁜 서울에 있다 조용한 이곳에 오면 브레이크 기간을 중간에 갖는다는 듯한 느낌이 있어요.
직접 촬영한 스냅들을 작업의 기초로 자주 활용하시는 걸로 알고 있어요. 작가님 작업을 보면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관찰하는 것에서 (화면 속) 이야기가 시작된다고 느껴지는데, 말씀하신 것처럼 두 도시의 다른 분위기가 관찰 대상에도 영향을 미치나요?
아무래도 그런 감이 있어요. 그 직접적인 영향을 제가 뚜렷하게 인지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환경이 달라지니 제가 대상을 관찰할 때 조금 더 낯설게 보게 되는 그런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외국에서 머물다 한국에 돌아오면 한국이 다르게 보이는 것처럼요. 별 것 아닌 것도 더 잘 보이게 된다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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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 홈페이지에 아카이빙이 워낙 꼼꼼하게 잘 되어 있어서 제가 실제로 볼 기회가 적었던 2000년대 초중반 작업들을 유심히 봤어요. 그런데 <Passport Photo> 시리즈 (2000)나 <Head> 시리즈 (2000), 혹은 <Postcard> 시리즈 (2002) 와 같은 2000년대 초반의 작업들에서는 최근 작업들에서 자주 나타나는 시간성의 개념이 크게 부각되지 않더라고요.
그 당시 작업들은 대학원 졸업 직후에 막 그렸던 그런 작업들이에요. 작업 보시면서 느끼셨을 수도 있는데,
당시에 벨기에 출신 작가인 뤽 튀만(Luc Tuymans)의 전시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어요. 소재를 접근하는 방식에 있어서 사진의 매체적 특성이 그대로 드러나면서도 회화적인 방법으로 표현해내는 걸 보고, 회화의 많은 가능성을 봤던 것 같아요. 그 시기를 기점으로 제 주변을 담은 가벼운 스냅 사진이나 엽서, 혹은 여권 사진과 같이 부분적인 파운드 이미지들을 활용해 짧은 이야기를 담은 작업들을 하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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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하신 시기의 작업들을 보면 본격적으로 네 컷의 분할식 구성이 등장을 하는 게 보여요. 그 구성이 제가 재미있다고 느끼는 지점인데, 그 때부터 시간성에 대한 개념 역시 화면에서 가시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고 느꼈어요.
그 시리즈를 저는 개인적으로 로모그래피(Lomography) 시리즈라고 불러요. 요즘은 그리 흔하지 않은데, 그 당시에는 토이 카메라 같은 형태의 4-5만원짜리 필름 카메라가 많이 있었어요. 정말 간단한 촬영 기능만 있는, 대충 감으로만 피사체를 찍는 카메라요. 그걸 사다 스냅 사진들을 찍기 시작했는데, 그 형식이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스냅 사진의 성격 자체가 우연히 촬영된 가벼운 느낌이 있잖아요. 애초에 정확하게 프레임을 잡아 정밀하게 찍는 것과는 거리가 있는 사진이다 보니 오히려 로우 테크의 특성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보고 싶었어요. 그게 또 당시 회화에 대한 저의 접근 방식이나 감수성과도 잘 맞았다고 느끼고요.
그 카메라는 렌즈가 네 개가 달려있어서 1초 동안 네 컷을 찍어요. 다시 말해 한 장에 네 컷이 나오는 거죠.
거기서부터 연속 장면들이 등장하는 특성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당시에 제가 그걸 의도했다기 보다 말씀하신대로 순간성과 형식의 신선함에 흥미를 가지고 이것저것 실험을 해보았다고 하는 편이 더 맞는 것 같아요. 그 특정 카메라가 시간을 담는 방식에 대한 흥미라고나 할까요. 돌이켜보니 현재 제 작업의 기반을 이루는 많은 것들이 그 로모그래피 시리즈 때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진이라는 게 때로는 기록을 목적으로, 즉 아카이브용으로 최대한 객관적인 소재를 담기 위한 수단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지극히 사적인 기억의 순간들을 포착하기 위한 수단이 될 수도 있잖아요. 선생님께서 이미지를 카메라에 담으실 때는 주로 어떤 목적을 두고 하시나요?
방금 주신 질문을 되새겨봤을 때,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도통 모르겠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두 개가 다 맞는 것 같아요. 두 목적이 다 있는데 예전에는 상대적으로 사적인 순간을 담은 주관적 매체로 더 다가갔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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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면에서 그렇게 느끼시나요?
과거에는 그리는 대상도 제 주변에서 자주 찾아 그렸고 저의 지인들도 자주 등장을 했거든요. 그런데 2010년 즈음을 기점으로 <A Man Ironing in a Round Gallery>(2010) 나 <Lighting Above>(2009-2010), <Two Stories>(2012)와 같이 본격적으로 전시장을 그린 작업들을 시작하며 사적인 기억과 기록의 목적이 합쳐지기 시작했어요. 예를 들어, 제가 참여하는 전시의 전시공간에서 관찰한 장면들을 찍기 시작한 건데, 그게 계속되면서 자연스럽게 현장에서 일하는 모습을 기록하는 성격까지 띠게 된 거죠. 그 뒤로부터는 점점 기록적인 성격이 더 강해지고 낯선 사람들을 많이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렇다고 요즘의 작업들이 아예 사적인 의미들이 담겨 있지 않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여전히 가끔 지인들이 등장을 하기도 하고, 대부분 제가 직접 촬영한 사진들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어쨌든 제가 경험을 한 순간들이잖아요. 다만 제가 적극적인 개입을 하지 않는 관찰자의 입장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기록적인 성격이 더 짙어 보이는 것 같아요.
촬영하신 사진들로 이미지들이 모이면, 어떤 기준으로 이미지들을 선정해서 화면에 옮기시나요?
대부분 인물의 동작을 기준으로 봐요. 말로 표현하기는 조금 어려운데, 보다 보면 마음에 드는 특정 동작들이 있어요. 대게 특별할 것 없는 일반적인 동작들이죠. 일하는 중간에 무언가를 들어올린다거나 어딘가를 쳐다본다거나, 뭐랄까, 순간성이 드러나면서 약간의 텐션이 있는 동작들이요. 그런 동작들을 중심으로 골라서 여러 이미지들을 합쳐요. 우연찮게 모든 게 맞아 떨어져 사진 속 이미지들이 화면으로 그대로 옮겨지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보통은 원하는 구도가 정확하게 찍힌 경우는 잘 없죠. 그래서 제가 원하는 동작들을 이 사진, 저 사진에서 가져와서 한 화면 위에 배치시키며 구성한다고 할 수 있어요. 작업마다 조금씩 차도가 있지만, 구도는 대체적으로 제가 만드는 편이에요. 보통 같은 장소에서 찍은 서너 점의 사진에서 출발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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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말씀하신 것을 듣다 보니 이미지의 연속성이 떠올라요. 카메라로 연속 촬영을 했을 때 찍힌 이미지들을 볼 때 느껴지는 거요. 최근에 부산 시립미술관에서 선보이신 <전시를 만들며 >(2023)를 보면서 이미지들이 캔버스를 넘어 공간을 매개로 다음 동작으로 이어지는 설치가 굉장히 재밌다고 느꼈어요. 작년에 Wess에서 열린 ⟪Sometimes it sticks to my body⟫의 시퀄 같은 전시 같기도 했고요. 캔버스를 공간 전체로 확장 시킨다는 점에서 말이에요.
부산 시립미술관에서 전시한 커미션은 (인터뷰 당시 기준) 제가 가장 최근에 한, 정말 새로운 작업이었어요. 저로서는 벽화 자체를 처음 시도하는 것이기도 했어요. 물론 말씀하신 Wess 에서의 전시처럼 과거 개인전을 할 때 늘 조금씩 설치 작업과 유사하게 공간과 연결해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그림 자체를 공간으로 생각하고 그리는 경우도 있었어요. 다만 Wess 때는 처음부터 기획을 맡으신 장혜정 큐레이터 님께서 벽을 강한 색으로 칠한다는 아이디어를 갖고 계셨어요. <전시를 만들며>의 경우, 부산 시립미술관이 곧 시작될 대대적인 보수 작업 전 마지막으로 열리는 전시다 보니, 공간으로서의 미술관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의의가 담긴 전시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획자 분이 꼭 저에게 할당된 전시공간을 자유롭게 써달라고 강조하셨어요.
이렇게 넓은 공간을 제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은 만큼, 이 참에 새로운 걸 시도해보자는 결심을 했죠. 오픈 두 달 전 쯤 미리 공간에 가서, 다른 전시들이 준비되는 순간을 담은 사진들을 열심히 찍었어요. 그 사진들을 시작으로 유화 작품을 두 점 그린 뒤 캔버스 속 이미지가 벽화로 연장되게끔 설치한 작업이에요.
작업하시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으셨나요?
벽화의 특성 상 설치 기간이 그리 길지 않잖아요. 보통 그림은 짧게 기간을 잡고 그리지 않는데, 해당 작업 같은 경우 일주일 안에 끝내야 해서 구상 자체도 새롭게 해야 했고, 어시스턴트도 난생 처음 구했어요. 또, 짧은 시간 안에 완성하기 위해서 유화 작품에 방해되지 않는 정도의 단순함을 원했어요. 제한적인 색을 사용하되, 필요한 재현적인 요소는 모두 포함된 드로잉을 그린 뒤 벽에다 옮기는 방식으로 작업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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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주제를 바꿔 보자면, 이전 작업부터 꾸준히 이미지의 연속성 외에도 자주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었어요. 바로 조명과 관련된 부분인데요, <긴 저녁>(2007), <리허설 02>(2017), <공원의 새 밤>(2019) 시리즈 등에서와 같이 어두운 밑바탕에 혼재된 인공 조명이 시선을 사로잡는 이미지들을 자주 발견할 수 있어요. 사실 현실에서는 조명이 주목의 대상이 되기 보다는 보통 다른 초점의 대상을 뒤에서 밝혀주는 역할을 주로 하잖아요. 그런데 작가님 작업에서는 반대로 조명이 시선을 사로잡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아시다시피 제 작업들에서는 실내 미술관이나 갤러리 모습을 다룬 작업들이 많아요. 화이트 큐브들에서는 보통 자연광이 잘 없잖아요? 그러다 보니 소재가 소재인 만큼, 우연히 인공 조명을 많이 그리게 되면서 점점 부각된 것 같아요. 인공 조명을 그리다 보니, (자연광에 비해) 빛에 대한 인식을 더 많이 하게 되고 제가 직접 작가로서 개입을 해서 여러 빛의 효과를 낼 수 있는, 빛 자체를 그리는 즐거움이 있더라고요.
광원에 대한 이런 흥미와 함께, 아무래도 밤이라는 시간대가 인공 조명이 야외에서 두드러지는 시간대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낮보다 더 빈번히 등장하게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해요. 밤이 주는 정취랄까, 그런 걸 그려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회화에 프레임이 주로 있다는 게 회화의 본질임과 동시에 한계라고도 느끼시나요? 질문을 드리는 이유는 작가님께서 독일 작곡가 페터 간 (Peter Gahn)과 협업하신 <Neon Gray Terminal> (Hite Collection, 2014)을 보며 회화라는 매체의 가능성을 또 한번 확장하려는 시도의 일환처럼 느껴졌었거든요.
사실 회화다 보니 협업을 할 일이 거의 없어요. 그 때 그 전시가 거의 유일하다고 할 수 있는데, 제 작업을 보는 동시에 현장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피터가 작곡한 일렉트로닉 전자 음악을 듣는 형식의 전시였어요. 피터가 제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캔버스 뒤에 컨택 마이크를 설치해서 그림이 그려지는 소리를 녹음한 걸 기반으로 한 사운드였어요. 그림이 시각적으로 결과물을 보여준다면, 사운드를 통해 붓질의 리듬, 감각 등을 사운드로 전환한 거죠.
그 때 그 작업이 협업의 첫 시작이었던 셈인데, 저로서는 제 작품을 처음 사운드로 접근해보는 경험을 한 거였어요. 사운드와 함께 작업을 보니, 가만히 시각적으로 보고 있을 뿐인데도 공간이 확장되는 듯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물론, 아예 날 것의 로우(raw)한 음향이 아니라 작곡가의 여러 노력이 가미된, 많은 과정을 거친 결과물이었죠. 그 협업을 계기로 공감각적으로 회화를 보게 되는 경험을 했고, 그게 그 이후의 작업들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어요.
회화의 매체적 한계와 특성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한계는 당연히 있어요. 그런데 저는 그 두 가지가 같은 개념인 것 같아요. 네모난 프레임이 존재하다 보니 움직임을 담는 데 제한이 있기도 하지만 사실 그 점 자체가 회화의 특성이자 본질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한계라고 말하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앞서 말씀드린 협업들이 그 제한된 감각, 혹은 회화에 대한 공감각적 인지를 확장해주는 것 같아 개인적으로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느껴요.
벌써 인터뷰를 끝마칠 시간이 되었네요. 향후 계획이 어떻게 되시나요?
이제 부산 전시 끝나고 정신없이 독일로 건너온 상황이라, 천천히 여유를 두고 개인전을 준비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제대로 공개할 기회가 없었던 원작들과 함께, 새로운 작업도 해볼까 고려 중이고요. 작년에는 식당의 주방을 소재로 작업을 자주 했었거든요. 아직 정해진 건 전혀 없고, 기존에 해왔던 것들을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풀어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에 열려있는 상태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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